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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왔으니 노저을 사람 곧 온다”...조선업 호황에 지역 경제 ‘방긋’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일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독에서 쏟아진 물고기 떼를 쓸고 있다. 이처럼 많은 물고기떼가 독에 들어오는 것은 드문 일로, 당시 활황의 징조로 여겨졌다. [사진 현대중공업]

지난 1일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독에서 쏟아진 물고기 떼를 쓸고 있다. 이처럼 많은 물고기떼가 독에 들어오는 것은 드문 일로, 당시 활황의 징조로 여겨졌다. [사진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 동구는 국내 최대 조선업 도시로 불린다. 현대중공업과 지난 50년을 함께 성장해왔다. 29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올해 LNG선 총 22척을 수주해 현대중공업역사상 최다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달 LNG선 7척을 약 2조원에 수주하면서 올해 조선사업 수주 목표인 83억달러를 일찌감치 달성했고,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10개 토크도 풀가동 중이다. 선가(船價)도 연일 상승세다. LNG선의 신조선가는 1년 전에 비해 20% 이상 올랐다.

조선업 경기가 회복되면서 울산, 경남 거제, 전남 목포 등 조선소가 있는 도시의 지역 경제에 훈풍이 불 조짐이다. 조선업 침체로 한때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난 근로자가 모여들고, 동시에 정착 인구도 늘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선 조선업 호황이 시작되면서 근로자가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회사 숙소에 입실한 협력업체 근로자는 지난해 말 463명에서 올해 8월 552명으로 증가하는 등 상승 추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타지역에서 오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차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근로자 1000명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소 1770명이 추가로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은 근로자가 더 필요하다고 봤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내년까지 총 6000명이 더 들어와야 작업이 수월히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소에 근로자가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도 훈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소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높아진 금리 때문에 크게 체감은 못 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에서 본격적으로 선박을 건조하게 되면 근로자가 모이고 부동산 수요도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근 음식점들도 기대를 품고 있다. 2017년 불황기때만 해도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인근 먹자골목은 텅텅 비었다고 한다. 먹자골목 고깃집 대표는 “9년전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는데 어느새 근로자들 오토바이 소리가 골목에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며 “다시 현대중공업이 살아난다는 얘기가 들리니 너무 반갑다”고 말했다.

울산 동구청 관계자는 “아무래도 조선업이 활기를 띠면 근로자가 모이고 인구가 자연스럽게 는다”며 “출산율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남 거제·전남 목포도 조선업 활기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 연합뉴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경남 거제와 대불산단이 있는 전남 목포도 조선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거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7월 기준 선박·해양플랜트·군함 등 3년 치 일감에 해당하는 130여척을 수주한 상태다. 조선 침체기였던 2016~2020년 한 해 평균 31척을 수주했는데 지난해 60척을 수주해 또다시 호황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제 삼성중공업도 올해 37척을 수주해 올해 목표치의 82%를 달성한 상태다. 9월 현재까지 총 수주잔량도 153척으로 3년 치 일감이 확보된 상태다.

목포 대불산단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들어 7월까지 62억달러 규모로 선박 45척을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1년간 수주량 45척(51억달러)을 넘어 2020년 수주한 27척(37억달러)의 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대한조선도 올해 7월까지 7척(8억9000만달러)의 선박을 수주해 2020년 1년간 수주량(7척, 4억달러)을 넘어섰다.

조선업계 “인력난 먼저 해결해야” 

지난 14일 오후 울산 동구 라한호텔에서 열린 '2022 조선업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면접을 보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사내 협력사 30개 업체가 참여해 배관, 도장, 전기, 중장비 등 직종에 256명을 모집했다. 뉴스1

지난 14일 오후 울산 동구 라한호텔에서 열린 '2022 조선업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면접을 보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사내 협력사 30개 업체가 참여해 배관, 도장, 전기, 중장비 등 직종에 256명을 모집했다. 뉴스1

다만 현재 조선업계는 인력난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주 52시간으로 인한 임금 감소와 건설업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강도가 인력난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무덕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은 “‘배가 들어왔으니 노 저을 사람이 온다’는 기대감이 있는데 구인 광고를 내도 근로자가 오지 않는다”며 “주 52시간 근무제로 야근과 특근 등 조선소 임금 관련 이점이 사라지면서 떠났던 조선 인력이 생각만큼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예전에는 조선소에서 3~4년 일하면 아파트 전셋값은 벌어간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해봤자 하루 단가가 18만원 정도니 누가 오겠느냐.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고민해달라”고 한숨을 쉬었다.

거제도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말부터 선박 제작 공정이 본격화되면 현장 일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거제를 떠난 용접 등 숙련공들이 임금과 근로환경 등의 문제로 되돌아오기를 꺼리고 있어 애를 태우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거제에서 빠져나간 숙련공들이 조선업보다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육상작업장인 반도체나 발전소의 일을 더 선호한다”며 “그쪽보다 더 좋은 조건이 돼야 인력수급이 원활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난에 따른 부품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남도 등에 따르면 선박용 부품을 계약한 대불산단 내 중소기업이 올해 들어 120여개 블록, 1만5000여t의 생산을 반납했다. 선박부품 생산물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 최대치로 늘었지만, 생산인력이 크게 부족해서다.

지자체 “다양한 지원방안 고민 중”

2017년 조선업 침체의 여파로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앞 먹자골목이 썰렁하다. 울산=최은경 기자

2017년 조선업 침체의 여파로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앞 먹자골목이 썰렁하다. 울산=최은경 기자

각 지자체와 조선업계는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선 울산 동구청은 지난해부터 조선업에 신규 취업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이주정착금을 1년간 월 25만원씩 지원한다. 또 주력사업 훈련장려금도 1인당 20만원 330여명에게 주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일정 기간 이상 근속한 사내 협력사 근로자에게 대학까지 자녀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고 주택자금 대출이자도 지원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근로자를 모으기 위해 일자리 박람회에 참가하고 조선업 관련 마이스터고와 협력하는 방안도 고민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문병환 울산 동구청 기획예산실장은 “결국 근로자가 와야 인구가 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구청에서도 다양한 정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예 조선업 전문 인력 키우기에 나선 지자체도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와 함께 2019년부터 조선업 기능인력 훈련수당을 지원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사업 등을 통해 올해 말까지 1166명의 조선 전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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