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 맞은 중·일 수교 50년…시진핑·기시다 “경축” 빠진 축전 교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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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2년 9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다나카 가쿠에이(사진 중간 왼쪽) 일본 총리와 오히라 마사요시(사진 왼쪽) 외무장관이 저우언라이(사진 중간 오른쪽) 중국 총리와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972년 9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다나카 가쿠에이(사진 중간 왼쪽) 일본 총리와 오히라 마사요시(사진 왼쪽) 외무장관이 저우언라이(사진 중간 오른쪽) 중국 총리와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서로 축전을 교환했다고 중국중앙방송(CC-TV)가 짧게 보도했다.

이날 중·일 양국 정상은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과 도쿄 한 호텔에서 각각 거행하는 기념행사에 축전을 보낸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면에 보도했다. 이날 오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공동 주최하는 도쿄 행사에는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교장관과 쿵쉬안유(孔鉉佑) 주일 중국대사가 참석했다.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등이 주최하는 댜오위타이 기념행사 참석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CC-TV의 양국 정상 축전 교환 소식은 한 달 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축전 교환 뉴스와 미세한 차이를 보였다. 당시 CC-TV는 “8월 24일 국가주석 시진핑은 한국 대통령 윤석열과 축전을 교환하고, 양국 수교 30주년을 ‘경축했다’”고 보도했다. 오늘 CC-TV는 “9월 29일 국가주석 시진핑은 중·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일본 총리 기시다 후미오와 축전을 교환했다”며 ‘경축한다’는 단어 없이 축전 교환 소식만 알리는 데 그쳤다.

지난 1972년 9월 29일 베이징을 방문한 다나카 가쿠에이(사진 왼쪽) 일본 총리가 마오쩌둥(오른쪽) 중국 지도자와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972년 9월 29일 베이징을 방문한 다나카 가쿠에이(사진 왼쪽) 일본 총리가 마오쩌둥(오른쪽) 중국 지도자와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양국 정부는 연내 기시다 총리와 시 주석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실현된다면 2021년 10월 전화 협의 이래 (처음이) 된다”고 덧붙였다. 막후에서 중·일 정상 간 전화 통화나 화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지만 쉽게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경축’이 빠진 CC-TV의 보도는 수교 50주년을 맞은 중·일 관계가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보다 더 어려운 상황임을 드러냈다. 류장융(劉江永) 칭화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날 “중·일 관계는 개선의 잠재력과 공간이 충만하지만 마땅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국부적인 대항이 양국 관계 대세에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다”고 환구시보 기고문을 통해 경고했다. 수교 50주년 기념일조차 중·일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각종 난제를 해결할 모멘텀이 되지 못했음을 토로한 발언이다.

도이체벨레(독일의 소리)는 29일 “지천명(知天命, 나이 50이 되면 하늘이 내린 운명을 알게 된다는 공자 논어의 구절)을 맞은 중·일관계가 수많은 난제에 직면했다”며 “역사가 남긴 문제와 새로운 모순과 갈등이 겹쳐 두 나라 사이에 경축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중·일 수교는 미소냉전과 중소분쟁이 격화됐던 지난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으로 죽의 장막을 연 뒤 9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당시 일본 총리가 중국을 전격 방문하면서 성사됐다.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공항에 나가 다나카 총리를 맞는 등 환대했다. 9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저우 총리와 다나카 총리는 “양국 사이의 비정상관계(전쟁상태)를 끝내고, 일본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한다”는 내용의 ‘중일공동성명’에 서명하며 국교를 수립했다. 당시 일본은 “과거 전쟁이 중국 인민에게 조성한 중대한 손해의 책임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표시한다”고 밝혔고, 중국 정부는 일본의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2012년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를 선포하면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의 강렬한 반발을 불렀다. 대규모 반일 시위가 벌어졌고, 중국의 해양경찰 함정은 센카쿠 순찰을 상시화했다. 또 다른 중일 관계의 화약고는 대만 문제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중국은 대만 주변 해역에서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이 당시 중국의 탄도미사일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지면서 일본은 자위대 강화와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렸다.

1937년 난징대학살을 포함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도 중일 관계의 개선을 막는 또 다른 장애다. 여기에 일본 1급 전범이 안치된 도쿄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도 현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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