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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아스팔트에 흰색 페인트칠…LA가 폭염과 싸우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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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한 인부가 바닥에 흰색 계열의 특수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 페인트가 칠해진 도로는 주변보다 기온이 2도 정도 낮아진다고 한다. 사진 로스앤젤레스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한 인부가 바닥에 흰색 계열의 특수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 페인트가 칠해진 도로는 주변보다 기온이 2도 정도 낮아진다고 한다. 사진 로스앤젤레스시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사는 한나 그룻겐(26)씨는 정원 잔디에 물을 주지 않는다. 그는 “집 근처 아하 호수가 가뭄으로 말라버리자 주 정부에서 잔디에 물주는 걸 금지했다. 물이 없으니 시에서도 방법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최근 독일 등 유럽 곳곳의 시민들은 이런 기후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베를린시에 사는 얀 크레슈마(59)씨는 “작년엔 홍수, 올해 가뭄이 너무 심각하다”며 “정부에서 하는 어떤 기후 정책을 내놔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수영장 사용 금지 등 독일 정부의 유례 없는 물 절약 정책을 시민들도 수긍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알레산드로 타타렐리(44)씨는“최근 유럽의 날씨를 보면서 기후가 빨리 변하고 있단 걸 처음 깨달았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수위가 낮아진 라인강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여름 수위가 낮아진 라인강의 모습. 연합뉴스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악의 가뭄과 홍수가 닥치면서 세계 곳곳에서는 예전에 없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유럽에서 만난 시민들은 ‘기후 뉴노멀’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었다.

[기후 뉴 노멀] <하>기후 뉴 노멀 시대의 생존법

폭염 이름 짓고, 대형 햇빛차단막

최근 여름 기온이 40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 시(市)는 지난 7월 24~27일 발생한 폭염에 세계 최초로 ‘조이(Zoe)’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각심을 주고 추후 폭염 패턴 분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스페인 기상청은 조이가 가장 뜨거운 3단계 폭염일 것으로 예보했고, 실제로 세비야 시내를 43도 이상으로 달궜다.

UAE 아부다비에 있는 알 바하르 타워 외벽에 햇빛 가림용 스마트 스크린이 설치돼있는 모습. 햇빛이 약해지면 스크린이 저절로 걷히도록 설계됐다. 독자 제공

UAE 아부다비에 있는 알 바하르 타워 외벽에 햇빛 가림용 스마트 스크린이 설치돼있는 모습. 햇빛이 약해지면 스크린이 저절로 걷히도록 설계됐다. 독자 제공

지난 8월 낮 최고기온 36도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프랑스 파리는 시내에 더위 쉼터인 ‘쿨 아일랜드’를 800개 이상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보다 2~4도 시원하도록 설계된 공원, 분수, 수영장, 박물관 등을 쉼터로 정했다. 유럽에서 가장 더운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은 도시 곳곳에 가림막을 설치하는 ‘그늘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 중이다.

여름철 낮 최고 기온이 50도까지 오르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 바하르 타워는 자동 제어 시스템이 탑재된 대형 차단막에 둘러 싸여있다. 26층 높이의 건물을 모두 덮은 차단막은 햇빛이 강할 때만 저절로 펼쳐지도록 설계됐다. 지붕에 정원을 가꾸도록 장려하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이나 일본 후쿠오카에선 ‘녹색 옥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옥상에 정원을 만들면 건물 내부의 온도가 2~3도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옥상에 식물을 키우는 일본 후쿠오카의 한 건물.

옥상에 식물을 키우는 일본 후쿠오카의 한 건물.

도시 온도를 낮추려고 아스팔트 도로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는 지역도 있다. 지난 20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를 흰색 계열의 특수 페인트로 칠하는 ‘쿨 페이브먼트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밝은색 옷을 입으면 햇빛을 반사해 더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지인 LAist는 올해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의 아스팔트 색을 바꾸고 있으며, 기후 변화 시대에 더 많은 아스팔트에 흰색이 칠해질 거라고 설명했다.

폭우 막는 ‘스펀지 도시’

폭우에 적응하기 위한 ‘스펀지 도시’는 2013년 베이징 대학의 유공지안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빗물 탱크나 녹지 등 물을 머금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게 핵심이다.

도쿄 간다가와-환상 7호선 지하 저수시설. 일본 도쿄도 건설국 홈페이지

도쿄 간다가와-환상 7호선 지하 저수시설. 일본 도쿄도 건설국 홈페이지

주요 대도시들이 주로 확보해둔 빗물 저장 공간은 지하에 설치한 대형 물탱크다. 폭우 시 쏟아지는 빗물을 저장했다가 비가 그치면 내보내는 방식이다. 일본 도쿄도엔 물 54만t을 저장할 수 있는 지름 12.5m, 길이 4.5㎞의 저수 터널이 설치돼있다. 연평균 강수량이 2400㎜로 한국(약 1500㎜)보다 많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는 비가 오지 않아도 활용할 수 있는 9.7㎞ 길이의 터널과 저수조가 약 300만t의 비를 저장할 수 있다.

최근엔 지상에서 물을 머금는 방식이 주목받는다. 지대가 낮아 침수 피해가 컸던 미국 뉴올리언스 주가 2005년 시행한 ‘엄브렐러 프로젝트’가 모범 사례다. 도시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들어내 지표면에 물을 최대한 가두는 방식이다. 엄브렐러 연합에 따르면 차 타이어에 흙탕물이 묻을 순 있지만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잔디를 깔면 잔디 면적의 최대 300배에 쏟아지는 비를 저장할 수 있다.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진행되는 앞마당 녹지화 프로젝트. 사진 urbanconservancy.org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진행되는 앞마당 녹지화 프로젝트. 사진 urbanconservancy.org

미국의 테네시주 내슈빌은 2010년부터 상습 침수지역의 주민들에게 주택 400채 이상을 매입해 공원으로 바꿨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내슈빌은 홍수 피해를 예방하는데 1달러를 투입할 경우 6달러 이상의 피해 감소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기후 적응 기술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유엔 회의에서 건설사 비야케 잉겔스 그룹은 세계 곳곳에 수상 도시 개념도를 공개했다.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대도시의 90%가 해일의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수상 도시 시범건설 사업 후보지로는 네덜란드, 몰디브, 우리나라(부산) 등이 꼽힌다.

UN해비타트와 협력하는 오셔닉스가 제시한 수상 도시의 모습. 오셔닉스

UN해비타트와 협력하는 오셔닉스가 제시한 수상 도시의 모습. 오셔닉스

“단기 대책 아닌 장기 계획 세울 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을 정책에 반영한 국가는 170개국에 달한다. 폭염, 홍수, 가뭄 외에도 생물 대발생, 산불, 식량안보, 감염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 적응 정책이 세워지고 있다.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이 실현되더라도 지구 온난화는 당분간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의회는 지난해 발간한 ‘기후 적응(adaptation) 전략’ 보고서에서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하더라도 기후 적응 정책은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의 기후 적응대책이 규모가 작고 단기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지영 한국환경연구원(KEI)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장은 "지금 인류의 기후 적응 노력은 온실가스 감축에 비해 도시나 국가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 학계, 민간이 함께 장기적인 기후위기 적응 정책을 발굴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 방콕 상공에서 인공강우 실험 중인 수송기. 사진 thethaiger

태국 방콕 상공에서 인공강우 실험 중인 수송기. 사진 thetha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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