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난 24일로 7개월을 넘기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시계’ 초침이 빨라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1일 부분적 동원령을 내리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데 이어 최측근들의 핵 위협이 연일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푸틴의 핵 사용 명령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도록 상업용 위성까지 활용하는 등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있다. 푸틴의 핵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푸틴, 핵 쏠까 안 쏠까
인류의 핵무기 사용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후 77년 간 핵무기는 ‘판도라의 상자’에 갇혔고, 지난 1980년 이후에는 지상 핵폭발 시험도 이뤄진 적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시간)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강력한 경고로 푸틴의 핵 사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구체적인 움직임도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대다수 러시아 전투기가 재래식과 전술핵 무기를 모두 탑재할 수 있어 상대가 기미를 알아채기 전에 핵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푸틴은 어떤 경우 핵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폴리티코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계속 밀리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곤경에 처하면 푸틴이 핵 공격으로 상황을 뒤집으려는 ‘광인 전략’을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EIP)의 제임스 액튼 핵 전문가는 폴리티코에 "푸틴은 핵무기를 사용해 모두를 공포에 빠뜨리고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핵 쏜다면 언제 쏠까
대경대 부설 한국군사연구소 김기원 교수는 "러시아에서 부분적 군 동원령에 반대 시위나 인접국 탈출 움직임이 더욱 확대되면 푸틴 대통령이 핵을 앞세워 국민에게 공포감을 부르고 통치력을 강화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핵 사용 결정이 우크라이나 전선 상황보다 러시아 내부 상황에 좌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최근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푸틴은 자신과 정권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핵을 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을 빌미로 핵무기를 꺼낼 수도 있다. 지난 3월부터 러시아 수뇌부는 수차례 "적의 군사공격에 따른 국가 존립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욱 문제는 러시아가 합병을 예고한 우크라이나 점령지 네 곳(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까지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서방 분석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를 탈환하려고 하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점령지 네 곳도 핵 위협이 고조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기원 교수는 "현재 점령지 네 곳에선 전투가 진행 중이라 러시아가 합병한다고 바로 핵무기를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군이 동·남부 전선에서 다 이기고, 크림반도나 러시아 본토로 진출할 때 핵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했다.
핵 쏜다면 어디로 쏠까
핵 공격 대상은 어디가 될까. WP는 인구가 비교적 적은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연안 지대나 민간인이 별로 없는 동·남부 전선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러시아는 결의만 보여주는 수준에서 핵무기를 쓸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는 드넓은 평야 지대라 적은 인명피해로 핵무기의 공포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유러피안 프라우다는 "수도 키이우 등 대도시는 가능성이 작다"면서 "미국 대사관을 포함한 어떤 대사관도 러시아 공격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월에 그랬던 것처럼 대대적인 철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어떤 수준의 핵무기를 동원할 수 있을까. 전 공군대학 총장인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전술 핵무기는 국지적으로만 사용해 피해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며 "저위력 전술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수준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BBC에 따르면 전술 핵무기는 파괴력이 1~100킬로톤(kt·핵폭탄의 위력을 나타내는 단위)으로, 국지전 등 전장에서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된다. 전략 핵무기는 파괴력이 더 크고(최대 1000킬로톤) 더 먼 거리에서 발사된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술 핵무기는 양쪽 모두 재래식 전력으로 싸우다가 전선이 뒤쪽으로 밀리면 사용한다고 하는데, 현재 러시아군 상황이 그렇다"며 "미사일 등 무기가 바닥난 상태라서 전술 핵무기로 판세를 바꾸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등 서방은 어떻게 대응할까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한다 해도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핵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전망된다. FP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핵전쟁은 승자가 없는 전쟁이며,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고만 수차례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외교안보연구소의 최우선 안보통일연구부 교수는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가 핵무기를 직접 사용한 군사시설이나 우크라이나 전선에 장거리 미사일을 쏘는 등의 공격을 할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미군과 나토군 등 지상군까지는 투입을 안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이 전쟁 당사자가 돼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신, 러시아에 대한 외교·경제적 고립과 우크라이나에 더 강력한 군사지원을 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최 교수는 "현재 북한처럼 모든 것을 봉쇄하는 엄청난 제재를 할 것"이라면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쓰면 명목상 중립 위치에 있는 중국·인도 등도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핵 전문가 헤더 윌리엄스 박사는 BBC에 "중국에는 선제 사용을 금하는 핵 교리(敎理)가 있다"면서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중국이라는 우군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