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가슴에 품고 각종 의료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환자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실·중환자실·호스피스·일반병동 등에서 간호사는 환자의 아픔과 죽음을 바로 옆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없다면, 이들의 성실한 희생과 봉사가 없다면 의료와 보건 수준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간호사의 임무를 규정하는 현행 의료법은 어떤가. 간호사의 업무를 규정한 의료법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표현으로 매우 모호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간호사는 특별한 독립성과 전문성이 없는 ‘보조자’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독립성 필요한 서비스 제공
현행 의료법선 ‘의사보조자’ 취급
희생과 봉사만 요구하면 곤란해
간호사는 실제 현장에서 단순히 보조자일 뿐인가. 국민 보건과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진료, 즉 진단과 치료만이 독립적이고 전문적 업무란 말인가. 간호사가 진단과 치료에서는 의사의 보조자 역할을 한다고 치자. 그러나 진단과 치료가 보건과 의료 분야의 전부는 아니다. 진단과 치료 분야 이외의 업무는 모두 간호사가 전문성을 갖고 독립적 판단으로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의사의 진료를 받기 전까지, 그리고 의사의 진료 후에 발생하는 각종 보건 및 의료 서비스는 모두 간호사가 제공하고 있다. 입원 환자의 경우 의사의 짧은 진료 시간 이외의 대부분 의료 서비스는 간호사가 제공하고 있다. 이런 엄연한 현실에도 간호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한국의 의료 서비스 수요는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총 병상 수는 2009년 49만8225개에서 2020년 71만6169개로 20만개 이상 증가했다. 전체 국민의 보건 의료 서비스 수요의 증가, 특히 고령화에 따른 환자 수의 절대적인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전체 의사 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간호사로 의사의 의료 서비스 수요 증가를 대체한 것이다. 간호사가 의사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간호사의 전문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터무니없는 현실로 인해 간호사는 업무의 강도 증가에 따른 피로 누적으로 직장 이탈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면허를 가진 간호사 중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는 51.9%에 불과하다. 신규 간호사의 사직률은 2013년 29.0%에서 2019년 47.7%로 증가했다.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는 7년 5개월에 불과하다. 간호사 업무가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경험이 쌓이기 전에 간호사를 그만두기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 숙련된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문제다.
이에 따라 간호사들이 근본적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명예롭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독립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70.2%가 간호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다. 간호사의 간절함을 한국사회도 인정한 결과다.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인은 당연히 사기가 떨어진다. 직업 포기와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직업의 자부심과 명예심이 높으면 희생과 봉사의 열의도 높아진다. 그러니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전문인의 직업 안정성과 보수를 높이는 것이 결국 국민에 유익하다고 역설했다. 자부심과 명예심이 높은 직업인은 본인의 업무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업무 외의 역할에서도 희생과 봉사로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지키기 때문이다.
나이팅게일 선서에서 간호사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력을 다하며, 의료인과 협조하고, 스스로 비밀을 지키며, 헌신하는 역할은 독립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간호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인정하는 간호법이 조속히 제정되지 않는다면 간호사의 사기는 더 떨어질 것이다.
직업의 독립성과 자부심을 강조하는 젊은 세대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간호사에게도 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과 봉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간호법 제정이 미뤄지는 만큼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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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 중앙대 행정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