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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이기적 집단의 문화 유전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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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경영학과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경영학과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동물)의 생물학적 특성이 유전자를 통해 어떻게 복제되는지를 설파했다. 유전자의 유일 목적은 생존이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지금의 ‘나’는 부모의 생물학적 형질이 복제되어 물려받은 것인데 예외적인 것이 있다. 부모가 노력으로 획득한 지식이나 지혜는 유전적 수단으로는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과 생활의 모범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습성을 통해 자식에게 전달될 수 있다.

기업조직의 성패도 문화와 직결된다. 일본 기업들이 한창 잘나가던 1970~80년대에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은 일본식 경영의 성공 요인을 알아내려 애썼고, 조직의 문화적 차이에서 해답을 찾았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개인의 단기 성과를 강조하던 미국과 달리 일본 기업들은 장기적 성과와 집단주의를 통한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이 무렵부터 미국 기업들은 조직 문화의 혁신에 공을 들였고 미국식과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절충한 경영혁신을 시도했다.

기득권 지키기로 변한 노조 문화
사회 갈등 키우고 시민들에 피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 아닌지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한 국가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도 문화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나 출산율도 문화적 영향을 받는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이민 2세 여성들의 삶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이들 여성의 노동참여율과 출산율은 출신 국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다중언어 사용국가인 스위스의 사례도 흥미롭다. 스위스는 시민의 장기기증 의무법안을 마련하면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탈리아어권 시민이 프랑스어권이나 독일어권 시민보다 장기기증 지지율이 2~3배 더 높았다. 언어는 조상 국가의 문화적 전달 매체이므로 시민 행동에 문화적 유전자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자가 오랜 기간을 걸쳐 진화하듯이 문화적 특성도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반영한다. 사회 변화에 맞게 기존 문화는 퇴색하고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 조직문화 혁신을 시도했다. 위계적·권위적 문화를 유연하고 참여적 문화로 바꾸기 위해 많은 기업이 시도한 것은 소위 ‘호칭 파괴’나 복장 자율화였다. 대기업 총수를 ‘회장님’으로 부르지 않고 ‘홍길동님’으로 부르고 직원들의 출근 복장을 넥타이 정장에서 해방시켰다. 회장님 지시사항이나 거창한 구호가 아닌 직원의 일상적 습관 변화가 아래부터 쌓여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

기업의 조직문화는 우리 사회 전체 문화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다양한 하위집단 문화가 존재한다. 만일 하위집단의 문화가 전반적인 사회 흐름과 배치되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선량한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 산업화·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역동성과 함께 성숙한 시민의식이 우리의 문화적 특성으로 정착되고 있다. 곤경에 처한 자영업자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를 시민들 스스로 기꺼이 도와주는 이타주의 문화도 돋보인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역행하고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문화가 다름 아닌 우리의 노조 문화이다.

지난 5년간 노조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5조원에 달한다. 올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처럼 열악한 근무환경과 저임금을 명분으로 삼는 생계형 노조가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최근 금융노조 파업처럼 평균 연봉 1억원이 넘고 엄청난 성과급을 받으면서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엘리트노조도 있다. 사용자의 경영권 행사로부터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우리나라 산별 노조는 기득권 문화로 변질하였고 불법 파업과 점거로 인한 손실은 파생 산업 근로자와 일반 시민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학적 특성이 전달되듯이 문화는 사상·언어 등을 통해 타인에게 전파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문화적 유전자(밈)을 심어 놓았다면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문화적 유전자는 그만큼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조와 같은 특정 집단의 지배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노조의 출발이 사회적 운동으로 시작되었듯이 노조 문화의 변화도 사회적 운동으로 촉발될 수 있다. 사회적 운동의 처음 동기는 행동이 아닌 불편한 감정과 불만에서 비롯된다. 열정적인 몇 사람이 현 상황에 대한 불만족을 표현하고 작은 승리를 통해 문화적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