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수리남 외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주목받는 남미 국가 수리남은 남한의 1.5배 크기에 전 국민이 54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드라마 흥행과 맞물리며 일약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한국전쟁 당시 수리남 군인 115명이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이력이 있으니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혈맹’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홍어·마약·갱단·부패 등의 키워드가 먼저 떠오르지만, 해외에서 수리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다름 아닌 축구다. 17세기 이후 지난 1975년까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사람과 자원의 교류가 빈번했는데, 축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리남은 북중미축구연맹(CONCACAF) 소속으로 월드컵 예선에 나서는데, 대표팀은 FIFA 랭킹 143위(9월 기준)로 지역 내 강호 멕시코(12위), 미국(14위), 코스타리카(34위) 등과 차이가 크다.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본 적도 없다.

특이한 건 수리남 혈통으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레전드 반열에 오른 축구 스타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중앙수비수로 첫 손에 꼽히는 버질 판데이크(31·리버풀)가 대표적이다. 중국계 수리남인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네덜란드대표팀 주장으로 오는 11월 카타르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은퇴 선수 중에도 수리남 출신 월드 클래스가 즐비하다. 1980년대 마르코 판바스턴(58)과 더불어 ‘오렌지 삼총사’ 멤버로 각광받은 루드 굴리트(60)와 프랑크 레이카르트(60)가 수리남 이민 2세대다. 두 선수의 아버지가 수리남에서 네덜란드로 함께 건너와 형제처럼 지낸 인연도 있다. 에드가 다비즈(49), 클라렌스 세도르프(46), 패트릭 클라위베르트(46) 등도 수리남의 피를 물려받았다.

드라마엔 “수리남 인구의 4분의 3이 마약산업과 관련이 있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극적 과장이 섞인 대사겠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마약 비즈니스에 연루돼 있다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목표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마약왕으로, 다른 누군가는 축구왕으로 성장하는 곳, 인구 54만의 소국 수리남의 두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