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영국 정부에 옐로카드를 들었다. 영국 정부의 대규모 감세 정책의 나비 효과가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어서다. 파운드화 투매에 따른 달러 강세가 각국의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엇갈린 통화·재정 정책이 영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경고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IMF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감세가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며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현시점에서 크고 목표 없는 재정 패키지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서로 엇갈린 목표를 두고 작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MF가 영국 정부를 향해 경고장을 날린 건 영국 정부의 엇박자 재정·통화 정책 때문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로 시장에 돈을 풀면서 다른 한편에서 금리를 올리면서 국가 채무 부담은 늘어나고, 경기 침체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어서다.
방아쇠를 당긴 건 대규모 감세 계획이다. 쿼지콰텡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 23일 450억 파운드(약 69조원) 규모 감세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4월부터 소득세 기본세율(20%→19%)과 연 소득 15만 파운드(약 2억3000만원)인 고소득자에 적용하는 최고세율(45%→40%)을 인하한다는 내용이다.
세금을 낮추면 재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나랏빚이 늘어나며 재정 부담이 커질 뿐만 아니라 시중에 돈이 더 풀리며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진다. 채권 발행으로 물량이 늘어나며 채권 값은 하락(채권 금리 상승)한다. 금리는 더 뛴다는 이야기다.
시중에 풀리는 돈이 늘어나면 통화 가치는 떨어진다. 파운드화 상승에 베팅했던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패닉 셀'에 나서며 파운드를 던진 이유다. 실제로 이날 이후 파운드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지난 22일 파운드당 1.0856달러이던 파운드화 가치는 28일 1.0691달러까지 밀렸다.
파운드화의 자유낙하는 수퍼 달러에 기름을 부으며 세계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28일 114.61을 기록했다. 20년 만에 가장 높다. 강달러의 질주에 원화와 위안화 등 주요국 통화는 급락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란은행(BOE)은 파운드 폭락을 막고 인플레 압력을 낮추려 대대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미 두 차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은 영란은행이 긴축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의 기준금리는 연 2.25%로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9.9% 상승하며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FT에 따르면 영란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휴 필은 “심각한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시장은 내년 5월까지 영국 기준금리가 연 6.2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채권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영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26일 연 4.24%로 뛰었다.
이종빈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금리 급등과 파운드 절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로 경제 체력이 낮아진 영국이 미국의 금리 경로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영국이 정책 미스매치를 보이며 단기 조치 없이 장기 계획만 내놓는다면 위기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지난 25일 ‘야후 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은 파운드 폭락을 불러와 결국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영국은 1976년에도 감세 정책으로 인플레를 부추겨 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이후 정부 지출을 삭감하고 금리를 인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