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정진석·주호영 ‘투톱’ 진용을 짠 국민의힘이 또다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부장 황정수)는 28일 이준석 전 대표가 제기한 3~5차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 심문을 진행했다.
이 전 대표는 지금까지 당을 상대로 5차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날 법원은 당의 ‘비상상황’을 구체화한 당헌 개정안 효력 정지(3차), 정진석 비대위 직무 정지(4차), 비대위원 6인 직무정지(5차) 가처분을 일괄 심문했다.
이 전 대표는 심문 전 법원 앞에서 “당이 정신을 차리고 이준석 잡기가 아니라 물가·환율 잡기에 나섰으면 좋겠다”며 “라면 가격은 15% 올랐고, 휘발유 가격도 높고, 환율은 1430원을 넘어선 경제 위기인데 왜 정치 파동 속으로 가야 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심문 뒤에는 “이준석만 날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당의) 주술적 생각을 볼 수 있었다”며 “당이 정상적으로 운영됐으면 좋겠고, 마지막 출석이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표 측 변호인단도 “복싱에 비유하자면 지난번 가처분 인용 때 9라운드에서 KO 시켰다면, 이번엔 3라운드 정도에 승부가 끝날 것”이라며 “저희가 200% 승소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측 대리인이자 비대위원인 전주혜 의원은 “가처분이 인용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우리 당으로서는 재앙”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가처분이 인용된다는 것은 이 전 대표를 쫓아내기 위한 계획하에 당헌 개정이 이뤄졌다는 논리가 인정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천동설과 같은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심문 뒤에는 “정치를 사법 영역에 끌어들인 것은 결국 채무자(이 전 대표)”라며 “다음 주가 집권 여당으로서 맞는 첫 국감인데 가처분 리스크에서 벗어나 국정에 집중할 기회가 와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김종혁 비대위원은 “가처분이 인용되면 국정은 마비되고 집권당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부지법은 이날 “국민의힘 관련 가처분 사건 결정은 다음 주 이후 이뤄질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이번 가처분의 쟁점은 13일 공식 출범한 정진석 비대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당의 비상상황을 ‘최고위원 4인 사퇴’ 등으로 구체화한 당헌 개정안의 적법성 여부다.
여당 내에는 의총 추인 및 당 전국위원회 의결 등 정상적 절차를 거쳐 당헌을 개정했고, 이로 인해 당이 비상사태임이 명확히 규정된 만큼 가처분이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경우 여당은 7월 8일 이준석 징계 사태 이후 이어진 지루한 가처분 공방을 접고, 진용을 재정비할 수 있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여권 관계자는 “또다시 가처분이 인용되면 집권당이 되돌릴 수 없는 혼돈에 접어들 텐데, 법원도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당헌 개정이 소급적용이라는 점을 들어 가처분이 또 인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번 재판부가 지난달 26일 이 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을 인용해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직무 정지했다는 것도 변수다. 이 재판부는 본안 판결 확정 전까지 효력정지 강제 집행을 일시 정지해달라는 국민의힘 측의 신청도 기각했다.
만약 가처분이 인용되면 주호영 비대위에 이어 정진석 비대위까지 집권당 지도부가 한 달 새 두 차례 좌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대행을 맡아야 하는데, 당연직인 주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을 제외하면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정족수도 채울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다만 이 전 대표 변호인단은 정진석 비대위가 주관한 원내대표 선거에서 선출된 주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