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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쓰레기도 말려서 보관...들어오면 못 나가는 국가고시센터

중앙일보

입력

인사혁신처, 정부 보안 시설인 국가고시센터를 최초로 개방했다. [사진 인사혁신처]

인사혁신처, 정부 보안 시설인 국가고시센터를 최초로 개방했다. [사진 인사혁신처]

‘대한민국 공무원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좌측 국가고시센터 입구로 들어오면 볼 수 있는 표지석에 새겨진 문장이다. 공무원 임용을 꿈꾼다면 통과해야 하는 17가지 시험문제가 바로 이곳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는 28일 국가고시센터를 언론에 공개했다. 시험 출제와 무관한 외부인에게 국가고시센터를 공개한 것은 2005년 준공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국가고시센터는 합숙 기간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는 정부 보안 시설이다. [사진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는 합숙 기간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는 정부 보안 시설이다. [사진 인사혁신처]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 최초 개방

공정한 채용과 직결한 장소인 만큼 국가고시센터는 철저히 보안·통제되는 국가보안시설이다. 출제위원들이 문제은행을 구축하는 순간부터 문제지를 인계하고 정답을 확정하는 순간까지 17단계를 거친다. 지난해 213과목 객관식 4660문제를 이곳에서 출제했다.

한 종류의 시험을 내기 위해서 시험위원은 7~18일 합숙한다. 올해 공직적격성검사(PSAT)와 5·7·9급 공무원 시험 등 17종 347개 과목 출제를 위해 285일간 국가고시센터를 활용한다. 지난해 시험위원 등으로 위촉된 인원은 7551명이다.

국가고시센터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컴퓨터를 이용할 때는 항상 감시하는 사람이 뒤에서 지켜본다. [사진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컴퓨터를 이용할 때는 항상 감시하는 사람이 뒤에서 지켜본다. [사진 인사혁신처]

이들이 합숙에 돌입하면 출입문은 물론 창문까지 모두 봉쇄한다. 오직 출입문 1곳으로만 드나들 수 있다. 외부와 연락은 모두 차단한다. 입소 당시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기기는 퇴소할 때까지 되돌려 받을 수 없다. 몰래 들고 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들고 오더라도 사용할 곳이 없다. 69대의 폐쇄회로(CC)TV와 보안요원이 곳곳에서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음(ㅁ)자 형태의 건물 사이에는 굵은 낚싯줄 120개가 촘촘하게 얽혀있다. 드론이 건물 내부에 접근해 문제를 촬영하지 못하도록 엮어 만든 드론 착륙 방지망이다. 조재운 인사혁신처 시험출제과 팀장은 “몇 년 전에 드론이 국가고시센터 건물 인근에 등장한 사건 이후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낚싯줄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고시부터 PSAT까지 17종 출제

국가고시센터 내부에서 심사위원들이 머무르는 숙소 앞 복도. [사진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 내부에서 심사위원들이 머무르는 숙소 앞 복도. [사진 인사혁신처]

합숙 기간에는 음식물쓰레기까지 배출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시험 출제와 유관한 쓰레기가 섞여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해당 기간 발생한 쓰레기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말려서 보관했다가 합숙이 끝나면 배출한다.

한 건물에서 24시간 생활하다 보니 내부에는 식당과 숙소·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1일 최대 수용 인원은 275명이며, 주로 2∼3인이 한방을 사용한다.

엄격한 보안 규정 때문에 국가고시센터 소속 공무원 중 일부는 한해에 절반 이상을 갇혀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약 출제 기간 상(喪)이 발생하거나 응급실에 실려 가면 3명이 동행하며 24시간 감시한다.

국가고시센터 외관. 17종 347개의 공무원 시험이 여기서 출제된다. [사진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 외관. 17종 347개의 공무원 시험이 여기서 출제된다. [사진 인사혁신처]

철저한 보안과 공정하고 전문적인 시험 출제 과정 덕분에 국가고시센터의 출제 오류 비율은 낮은 편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국가고시센터에서 만들어낸 문제의 오류율은 0.06%다. 국회사무처(0.18%)나 법원행정처(0.16%)와 비교해도 낮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일할 유능하고 실력 있는 인재를 뽑는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덕분에 사실상 감금된 생활을 버티며 문제를 낸다”며 “시험 출제 오류율 0%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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