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상 예보 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수천억 원의 비용을 투자한다.
[기후 뉴 노멀] <중>엉클어진 기후 시스템중>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수치예보 모델을 개선하기 위한 ‘컴퓨팅 파워’ 확보다. 기상·기후 전용 슈퍼컴퓨터가 주목받는 이유다. 슈퍼컴퓨터는 매년 6월, 11월 세계 최고 500위 안에 드는 성능의 컴퓨터를 일컫는데, 올해 6월 기준 기상‧기후 전용으로 총 27대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예보 기법이 사용되고 차세대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슈퍼컴퓨터의 계산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모델의 계산 속도가 빠를수록 예보의 정확도는 높아질 수 있다.
세계 최고 기상용 슈퍼컴퓨터는 한국이 보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기상용 슈퍼컴퓨터는 한국이 보유하고 있다.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 위치한 기상청 슈퍼컴퓨터 5호기 ‘마루’와 ‘그루’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세계 31번째로 평가되는 마루는 18Pflops(페타플롭스·초당 1.8경 번의 연산을 한다는 의미)의 연산 성능을 자랑한다. 쌍둥이 컴퓨터인 그루의 성능도 같은 수준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8월 약 628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5호기를 기상 예보에 투입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연산 성능 49위·50위의 슈퍼컴퓨터 도그우드(Dogwood)와 캑터스(Cactus)를 보유하고 있다. 확률 기법을 활용한 모델 개선에 사용되는 이 슈퍼컴퓨터는 초기 계약에만 약 1억5000만 달러(한화 약 2137억원)가 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슈퍼컴퓨터들이 기상용 슈퍼컴퓨터 10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유럽중기예보센터, 영국기상청 등도 차세대 슈퍼컴퓨터 도입 사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선 1초에 100경 번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엑사플롭스(Eflops)급 슈퍼컴퓨터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극단적 이상기후는 ‘뉴 노멀’…“기후변화 영향 인정해야”
엄청난 연산 성능이 필요한 건 기후 변화의 영향을 기상 예보에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2021 기후 상태보고서’에서 “강력한 폭염, 홍수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이제 ‘뉴 노멀’이 됐다”고 경고했다.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극단적 이상기후는 이제 뉴 노멀이 됐고 이 중 일부는 인간이 일으킨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폭염과 폭우로 몸살을 앓았던 영국 기상청도 “기후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변수를 넣지 않으면 어떤 모델도 이 상황을 예측해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올해 유럽 전역에선 ‘열돔’ 고기압의 영향으로 40도가 넘는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등 예측불가능한 기상 현상이 나타났다. 날씨와 기후 변화를 연관 짓는 것을 꺼리던 과거와 달리 전 세계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유희동 기상청장도 지난 8월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집중호우에 대해 “기후 변화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기상청은 다음 달 한국기상학회를 시작으로 한국형 기후를 재정의하는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