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블랙핑크와 걸그룹 전성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BTS가 하도 많은 신기록을 세워놔 요즘은 웬만한 기록으로는 감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블랙핑크가 해냈다. 정규 2집 ‘본 핑크’로 걸그룹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서구 팝 양대 산맥인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1위,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 1위에도 올랐다. 스포티파이 1위는 BTS도 해보지 못한 기록이다.

앨범 '본 핑크'로 K팝 걸그룹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앨범 '본 핑크'로 K팝 걸그룹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그간 빌보드 앨범 1위는 BTS·슈퍼엠·스트레이키즈까지 K팝 보이그룹의 전유물이었다. BTS 이전에 미국 시장을 맨몸으로 두드리며 한류의 초석을 깐 보아, 원더걸즈, 소녀시대 같은 여자 아이돌이 있었다는 점에서 블랙핑크의 선전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BTS에 블랙핑크가 가세하면서 진정한 ‘K팝 인베이전(침공)’이 시작됐다”며 “BTS의 병역 문제를 감안하면 BTS 다음은 블랙핑크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블랙핑크의 폭발적 인기는 이미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8180만 명으로 압도적인 전 세계 1위다. 2위인 저스틴 비버(7010만)를 크게 따돌린다. 억대 뷰 영상이 33편, 누적 조회 수가 269억 뷰다. 멤버별 인기 지수가 드러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도 K팝 가수 1위는 블랙핑크 리사(8247만 명)다. 그 뒤를 블랙핑크 다른 멤버들이 잇고, 또 그 뒤를 BTS 멤버들이 잇는다.
K팝 아이돌의 3대 요소인 비주얼·가창·퍼포먼스를 갖춘 블랙핑크는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사랑받아왔다. K팝 아이돌을 넘어 글로벌 셀러브리티로 받아들여진다는 차별점도 있다. 제니(샤넬), 리사(셀린느), 지수(디올), 로제(생로랑) 등 전원이 명품 브랜드의 글로벌 앰배서더(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BTS가 비주류의 반란이라는 언더독 서사로 다양성과 소수자성에 민감한 MZ세대를 파고들었다면, 블랙핑크는 글로벌 셀러브리티, 글로벌 패션 아이콘으로 MZ세대의 워너비 스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태국인 리사를 비롯해 해외 생활 경험이 있는 멤버들이라 영어·일본어·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강점이다.
블랙핑크의 글로벌 선전과 함께 최근 국내 시장에선 ‘걸그룹 대세’가 눈을 끈다. 이달 19~25일 국내 음원차트 멜론의 톱10에는 8곡이 걸그룹 블랙핑크·소녀시대·아이브·뉴진스 곡이었다. 특히 신예 아이브와 뉴진스는 강렬하고 센, 해외에서 선호하는 전형적인 K팝 스타일 대신 이지 리스닝 계열의 대중적 음악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 같은 걸그룹의 초강세는 아이돌 팬덤의 기본 동력이 남자 아이돌을 향한 소녀팬들의 ‘유사연애’에 기반한다는 오랜 통념을 다시금 깬다. 걸그룹의 팬층도 기왕의 삼촌팬이 아니라 이모팬으로 확대됐다. 알라딘에서 아이브 앨범 ‘애프터 라이크’의 예약 판매는 여성이 69%, 남성이 31%였다. 여성에서도 40대가 25%로 가장 높았고, 다음이 10대(22%)였다. 소비력을 갖춘 40대 여성이 어린 걸그룹을 적극적으로 소비한다는 증거다. 여성이 여성 아이돌을 좋아하고, 양육하듯 후원하며, 자매애를 확인하고, 동시에 닮고 싶은 워너비로 선망한다는 얘기다. 블랙핑크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타고난 빼어난 미모, 좋은 집안 배경, 몸에 밴 글로벌 감각과 세련된 매너, 명품으로 완성되는 ‘수퍼 셀럽’ '수퍼 리치' 이미지가 선망의 요체다.
 전통적으로 팬덤 비즈니스인 K팝은 스타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여성 소비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상대적으로 돈 쓰기에 인색한 남성 팬이 많은 걸그룹보다 여성 팬이 많은 보이그룹이 언제든 우위였다. 걸그룹은 팬덤을 뛰어넘는 대중적 히트곡을 내느냐에 명운이 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걸그룹을 위해 주머니를 여는 여성 팬들이 등장했고, 기획사도 걸그룹에 주력한다. 심지어 걸그룹은 리스크 관리에도 강점이 있다. 학폭 의혹으로 문제가 된 걸그룹 멤버들은 있어도 남자 아이돌에 비해 사생활 문제로 타격을 입는 케이스가 덜하다. ‘군백기’도 없다. 세상이 바뀌니 기획사가 바뀌고 산업이 바뀐다. ‘걸그룹 천하’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오늘 K팝 동네에서 가장 눈길 끄는 풍경이다.

K팝 걸그룹 역사 새로 쓴 블랙핑크 # BTS 이어 한류 새 장 이어갈 강자 # 국내도 걸그룹 대세 새로운 바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