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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신실함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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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소설가로 데뷔한 직후에는 독자 반응 하나하나가 신기했다. 당시에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내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그리로 긴 질문을 보내오는 독자들이 있었다. 특히 데뷔작이 청년 세대의 무력감을 다룬 내용이어서, 20대 독자들의 메일을 종종 받았다.

그러면 나는 꽤나 정성스럽게 답장을 적어 보냈다. 고맙기도 했고, 무겁고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는 글들이 구조 요청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청소년 독자들의 질문은 그저 놀라웠다. 당대 소설을 이렇게 열심히 있는 10대가 있다니!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명이! 우리나라 미래는 어둡지 않아!

내 마음과 시간 내어주는 충실함
‘N잡’과 네트워크 시대에 퇴색해
깊고 충만한 순간도 사라지는 듯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런 답신을 그만두었다. 어느 독자가 내 답장을 그대로 자기 블로그에 올린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자기 고민을 복사하다시피 해서 여러 소설가에게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중고생들이 수행평가나 학교생활기록부의 독서활동란,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해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다.

어떤 독자가 그렇게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받은 답장을 활용하는 일은 그의 자유다. 거기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내 자유고. 독자의 진심을 내가 알 도리는 없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 그렇게 정리하면 깔끔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혼자 멋대로 배신감을 느꼈던 걸까. 애초에 뭘 기대했기에? 그 메일 작성자들과 나 사이에 무엇이 있었다고 믿었기에?

편지의 긴 분량을 보고 작성자가 거기에 품을 많이 들였을 거라고 예상했다. 인생 고민은 남 앞에서 쉽게 떠들지 않는 사적인 것으로, 절박한 상황이나 신뢰하는 상대 앞에서만 털어놓는 거라 여겼다. 어떤 책을 골라 읽고 마음이 움직여 작가에게 질문을 보내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나를 위해 그만큼 시간을 쏟고 내면을 보여준 이에게, 나도 그만큼 내 시간과 마음을 내줘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 자세를 도덕이라 해야 할지 예법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튼 구식이다. 나는 정보를 순식간에 복사할 수 있고 대량으로 동시에 발송할 수 있으며 그 모든 과정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이 늦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기대했지만 얻지 못한 것, 긴 답장을 쓸 때 지녔던 어떤 의무감, 아날로그 시대에 비해 이제는 많이 옅어졌다고 여기는 그 태도를 뭐라 불러야 할까. 시장 수요나 경쟁자의 공급량과 관계없이, 성공 여부와도 무관하게, 자기 시간과 정성을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충실히 내어주는 개인의 모습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나.

신실함이라는 단어가 그에 가장 가깝지 않나 싶다. 진중함이라든가 절제력처럼 예전에는 찬미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촌스러워진 미덕이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인터넷 시대에는 사소한 일에도 호들갑을 잘 떨수록 보상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유튜버부터 정치인까지 다 호들갑을 떨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내가 막연히 이해하기로, 신실함은 ‘깊이’와 관련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어떤 주제를 탐구하는 일에서나, 목표를 추진하는 데에서나, 많은 대상을 넓고 얕게 쫓는 사람을 우리는 신실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N잡을 갖고, 숏폼 콘텐트 플랫폼을 누비고, 페친·인친·트친들과 소통하면서 견지하기는 어려운 삶의 자세다.

이쯤 되면 작금의 시대정신에 맞서, 기회를 포기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실해져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참 고민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혹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남에 대해 신실해지고, 자신 역시 그런 신실함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신실함 속에서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충만함이 있는 게 아닐까.

고백하자면 얼마 전 쌓인 메일들에 답장을 몰아서 쓰다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반쯤 기계가 된 기분으로 자판을 두드리다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을 잊었다. 제법 신경 쓰는 말투였기에 상대는 더 황당했을 것 같다. 나는 그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지 않았으면서 그런 척 했고, 그 사실을 들켜 무척 부끄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모든 메일에 신경 쓴 듯 보이는 답장을 하겠다, 인맥을 유지하겠다’는 욕심 자체가 잘못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인맥이라는 걸 넓게 유지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여러 주제를 두루 두루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이들을 향해, 깊고 충실하게 살고 싶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