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소모적 대통령 발언 논쟁 이젠 중단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영상을 함께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영상을 함께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퍼펙트 스톰 오는데 용렬한 싸움만

여야, 한발 물러서 민생에 집중하길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방문 도중에 불거진 비속어 논란은 이제 여야의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다. 방송 카메라에 잡다한 배경음과 함께 녹취된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 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를 두고 양쪽 진영이 정반대로 인식해서다. 야권에선 MBC 보도대로 국회를 미 의회로 단정하고 ○○○를 ‘바이든’이라고 주장하며 동맹을 모욕했다고 펄펄 뛴다. 대통령실에선 ○○○를 ‘날리면’이라고 반박하며 바이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맞선다.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발언 내용을 직접 확인해 주지 않은 채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두 진영 사이에 어떤 접점도 없어 보인다. 듣기에 따라 ‘바이든’으로도, ‘날리면’으로도, 그저 뭉개진 소리로도 들리는 ○○○는 지지 정당을 드러내는 감별기로만 기능할 뿐이다.

지금 한국은 동시다발 악재들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목전에 있다. 미국과 중·러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안보 위기와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경제 위기가 맞물렸다. 일각에선 1997년 아시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가야 할 때, 이런 식의 소모적인 정쟁이나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우선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발언의 진실과 경위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걱정을 안겨드려 송구하다는 뜻을 표했으면 될 일이다. 더욱이 바로 대처했다면 해프닝이었을 사안을 15시간 동안 공식 대응을 안 하는 바람에 세계적 논란으로 키운 게 대통령실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진 않고 공세적으로 진상 규명을 외치는 건 적절치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통령실이 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자제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갈 한 축으로 갈등을 조장, 증폭해선 곤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처신은 용렬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MBC 보도 전부터 “윤 대통령이 미 의회를 모욕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논란을 키우더니 어제는 한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파행시켰다.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도 제출했다. 이게 그럴 만한 사안인가. MBC가 미 의회와 바이든이라고 단정해 보도한 건 언론 윤리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데도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진실언론을 지키겠다”고 감싸는 것도 면구한 일이다. 국익보다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진짜 부끄러운 건 소모적 논쟁을 이어가는 우리 정치권의 민낯이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집단적 자해는 이쯤에서 중단하고, 민생을 살리는 데 집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