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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국장날, 일본은 둘로 갈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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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27일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오른쪽)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운데)가 헌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27일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오른쪽)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운데)가 헌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1년 일본 동일본대지진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래 ‘꽃이 핀다’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27일 오후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진행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서 상영된 고인의 생전 영상이다.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를 힘주어 외치는 장면, 세계 각국 정상들과 환히 웃고 있는 모습 등 8년 8개월 재임하는 동안의 업적을 보여주는 장면이 이어졌다.

지난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탄에 맞아 숨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등 해외 주요 인사 700여 명을 포함해 4300여 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도쿄 시내 곳곳이 온종일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기 위해 헌화대를 찾은 시민들과 반대의 뜻을 표하는 시위대로 혼잡을 이룰 정도로 국장은 극심한 국론 분열 속에서 치러졌다.

국장이 열린 일본무도관 인근엔 이른 새벽부터 조화를 든 일반인 참배객이 몰려들었다. 오전 11시쯤엔 참배객들이 헌화대가 마련된 구단시타(九段下) 공원에서 인근 지하철역까지 3㎞ 이상의 인도를 가득 메웠다.

같은 시간, 인근 공원에선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하는 시위대 1000여 명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총리로 오래 있는 동안, 일본은 점점 엉망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왜 그의 장례에 우리의 소중한 세금을 써야 합니까?”

일본무도관에 걸린 아베 전 총리의 대형 영정. 이날 도쿄 거리엔 조문객과 반대 시위대가 각각 몰려 국장을 둘러싼 분열상을 보여줬다. [AFP=연합뉴스]

일본무도관에 걸린 아베 전 총리의 대형 영정. 이날 도쿄 거리엔 조문객과 반대 시위대가 각각 몰려 국장을 둘러싼 분열상을 보여줬다. [AFP=연합뉴스]

일본무도관 인근, 국회의사당 등에서 시작된 국장 반대 시위대의 행렬이 긴자(銀座)와 도쿄역 등 시내 중심가를 에워쌌다. 시위에 참여한 60대 남성은 “국민의 60%가 반대하는 국장을 밀어붙이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아베는 죽으면서까지 일본인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론이 커지는 이상한 상황에서 열린 국장”이라며 “민주 정치 절차가 부족한 대응이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지지통신은 “고인의 생전 업적과 상관없이 조용히 보내주는 일본 문화 속에서 장례 방식을 둘러싸고 이렇게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논평했다.

국장은 이날 오후 2시 아베 전 총리의 유골함이 식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날 조사에서 “아베 당신은 오래 살아남아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었다”며 “당신이 구축한 토대 위에, 지속적으로 모든 사람이 빛나는 일본을, 지역을, 세계를 만들어가겠다고 맹세한다”고 말했다. ‘지인 대표’로 나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도 “고락을 함께한 7년 8개월(스가가 최측근인 관방장관으로 재임하며 아베와 함께한 기간), 나는 정말 행복했다”며 “당신은 우리나라 일본의 진정한 리더였다”고 추모했다.

‘조의를 강요한다’는 반발을 우려해 일본 정부는 지자체나 학교 등에 조기 게양이나 휴교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 다만 국회의사당과 정부 각 기관, 도쿄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오키나와(沖縄)현 제외)들은 이날 일제히 청사에 조기를 내걸었다. 오키나와현 측은 “국민 안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며 조기게양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에서 왕족이 아닌 일반인의 국장이 열린 건 1967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 이후 5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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