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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8개월 총리였던 아베, 마지막 가는 길 日 둘로 갈랐다

중앙일보

입력

동일본대지진 당시 희생 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 '꽃이 핀다'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전 총리의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27일 오후 일본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진행된 아베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서 상영된 고인의 생전 영상이다.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를 힘주어 외치는 장면, 세계 각국 정상들과 환히 웃고 있는 모습 등 8년 8개월의 재임 기간 중 업적을 보여주는 장면이 이어졌다.

27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의 국장이 열린 도쿄 일본무도관 내부. 단상은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을 꽃장식으로 형상화했다. AP=연합뉴스

27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의 국장이 열린 도쿄 일본무도관 내부. 단상은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을 꽃장식으로 형상화했다. AP=연합뉴스

같은 시간 인근 공원에선 아베 총리의 국장에 반대하는 시위대 1000여명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총리로 오래 있는 동안, 일본은 점점 엉망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왜 그의 장례에 우리의 소중한 세금을 써야합니까?"

지난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탄에 맞아 숨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극심한 국론 분열 속에서 치러졌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에서 왕족이 아닌 일반인 국장이 열린 건 1967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 국장 이후 55년 만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등 해외 주요 인사 700명을 포함해 430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장례식은 경건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도쿄 시내 곳곳은 하루 종일 아베 총리를 추모하기 위해 헌화대를 찾은 시민들과 반대의 뜻을 표하는 시위대로 혼잡을 이뤘다.

스가 전 총리, "당신은 진정한 리더였다" 

국장은 이날 오후 2시 아베 전 총리의 유골함이 식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恵) 여사로부터 유골함을 넘겨 받아 꽃으로 만든 후지산 모양의 단상에 안치했다.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27일 오후 유골함을 들고 일본무도관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27일 오후 유골함을 들고 일본무도관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어 일본국가인 '기미가요' 연주, 묵념에 이어 참석자들의 조사와 헌화가 이어졌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조사에서 "아베 당신은 오래 살아남아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었다"며 "당신이 구축한 토대 위에, 지속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빛나는 일본을, 지역을, 세계를 만들어가겠다고 맹세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 대표'로 나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도 "각오와 결단의 매일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당신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고락을 함께 한 7년 8개월, 나는 정말 행복했다. 당신은 우리나라 일본에 있어 진정한 리더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스가 전 총리는 아베 전 총리 재임 시절 7년 8개월 간 총리의 최측근인 관방장관을 지냈다.

"국장 치를만한 업적" vs "세금 아깝다"

이날 국장이 열린 일본무도관 인근엔 이른 새벽부터 꽃다발을 든 일반인 참배객이 몰려들었다. 오전 11시 경엔 참배객들이 헌화대가 마련된 구단시타(九段下) 공원에서 인근 지하철역까지의 인도를 가득 메우며 3㎞ 이상 이어졌다.

27일 도쿄 구단시타 공원에 마련된 일반인 헌화대에서 시민들이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7일 도쿄 구단시타 공원에 마련된 일반인 헌화대에서 시민들이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전에 반차를 내고 왔다는 30대 회사원 남성은 "성인이 된 후 계속 봐 온 총리여서 각별한 마음이 있다"면서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국장을 치를 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은 "새벽 5시부터 사람들이 모여 예정보다 30분 빨리 헌화를 시작했다"면서 "줄을 서더라도 헌화까지 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도 도쿄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일본무도관 인근, 히비야 공원, 국회의사당 등에서 시작된 시위대의 행렬이 긴자(銀座)와 도쿄역 등 시내 중심가를 에워쌌다.

시위에 참가한 60대 남성은 "국민의 60%가 반대하는 국장을 밀어붙이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아베는 죽으면서까지 일본인들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국장 반대' 피켓을 든 50대 여성도 "고통 받는 국민이 많은데 이미 세상을 떠나 가족장까지 치른 사람에게 왜 16억6000만 엔(약 163억 원)이나 되는 세금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7일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도쿄 시내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27일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도쿄 시내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 불신 초래"

장례식은 큰 사건 사고 없이 끝났지만 여파는 이어질 전망이다. 지지통신은 이날 국장에 대해 "고인의 생전 업적과 상관없이 조용히 보내주는 일본 문화 속에서 장례 방식을 둘러싸고 이렇게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논평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론이 커지는 이상한 상황에서 열린 국장"이라며 "민주 정치 절차가 부족한 대응이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조의를 강요한다'는 반발을 우려해 일본 정부는 지자체나 학교 등에 조기 게양이나 휴교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의사당과 정부 각 기관, 도쿄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날 일제히 청사에 조기를 내걸었다. 오키나와(沖縄)현은 이날 조기 게양을 하지 않겠다면서 "국민들 안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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