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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표명 시기 지났다"…비속어 논란 尹참모의 강공 이유 셋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5일 도어스테핑에서 비속어 논란에 유감 표명 없이 진상 조사를 요구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뉴스1

지난 25일 도어스테핑에서 비속어 논란에 유감 표명 없이 진상 조사를 요구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뉴스1

“이미 유감 표명을 할 시기는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소위 ‘비속어 논란’에 사과 없이 강경 대응을 택한 이유를 묻자 복수의 대통령실 참모들이 전한 말이다. 이들은 “내부에서 유감 표명을 하자는 사람들이 왜 없었겠느냐”면서도 세 가지 이유를 들며 이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도어스테핑(약식문답)에서 비속어 논란에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건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그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고, 그와 관련된 나머지 이야기는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 더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상 조사라는 반격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본질은 비속어 아닌 자막조작”

우선 대통령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비속어 논란’이 아닌 ‘MBC의 자막 조작’을 통한 “한·미 동맹 훼손 시도”라 보고 있다. 이재명 부대변인은 27일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비속어 논란이 본질이 아니다”며 “음성분석 전문가도 특정할 수 없는 단어를 일부 언론에서 특정했다. 누가 보더라도 동맹관계를 훼손하고 동맹을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의 문장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 부대변인이 직접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도 드문 일인데, MBC라디오에 출연해 MBC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유감 표명은 본질이 호도되고 마치 윤 대통령이 실제 ‘바이든’이라 말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앞서 MBC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동안 대화한 뒤 행사장을 빠져나오며 한 발언을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아 보도했다. 대통령실이 약 10여 시간 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국회’ 역시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를 지칭한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는데, 이 부대변인은 이날 “확인한 전문가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바이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며 “저희(대통령실)에게 확인도 없이 대통령의 발언이 기정사실화돼 (MBC를 통해) 자막화되고 무한 반복됐다”고 재차 날을 세웠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MBC에서 외교적 파장이 우려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며 “파장을 우려한 것이 아니라, 외교적 파장을 일부러 만든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MBC에겐 오보가 아님을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어 지난 26일 저녁 MBC 박성제 사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공문을 보내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 없이 이뤄진 보도로 대한민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가 훼손되고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며 ▶음성 전문가도 해석이 어려운 윤 대통령의 발음을 보도한 근거 ▶대통령실에 거친 확인 절차 ▶외교분쟁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미 국무부와 백악관에 입장을 요청한 이유 등을 질의했다. 이에 MBC는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압박으로 비칠 수 있어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에 '바이든'이란 자막을 달아 보도했던 MBC이 화면.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MBC 캡처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에 '바이든'이란 자막을 달아 보도했던 MBC이 화면.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MBC 캡처

尹의 불분명한 기억, 강한 조작 의심 

비속어 자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분명한 기억도 고심거리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순방 기간 비속어 논란을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바이든이라 말한 적이 없다”며 비속어 사용에 대해서도 기억이 불분명하단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거의 100% 조작된 것이라 보고 있다”며 “기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감 표명을 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등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이XX’란 발언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비속어의 경우 순방 기간 대통령실의 즉각적인 반박이 나오지 않아 이미 기정사실화된 측면이 있다. 대통령실은 그래서 “이XX에 대해선 따로 밝힐 입장이 없다”는 수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미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진상 조사’를 제시하며 퇴로 없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점도 강경 대응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유감 표명을 했어야 한다면 순방 기간, 혹은 도어스테핑 때 해야 했다”며 “이미 타이밍은 지나가버렸다”고 했다. 대통령실 실무진 사이에선 “유감 표명 뒤 진상조사 요구가 정도”라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한 실무진은 “방향이 정해졌는데 누가 감히 말을 꺼낼 수 있겠느냐”고 답답함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7일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진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는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의 모습. 뉴스1

더불어민주당은 27일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진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는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의 모습. 뉴스1

퇴로 없는 가이드라인, 野 강력 반발 

윤 대통령의 강경 대응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의 앞뒤가 다른 이중적 태도는 한·미 동맹에 있어 심각한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맞불을 놓은 뒤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언론단체들도 “사태를 수습하는 유일한 방책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솔하게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일”이라며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권 관계자는 “실제 바이든이 아닌 날리든이고,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라 할지라도 야당과의 협치는 사실상 끝난 상황”이라며 “야당은 물론 언론과도 각을 세우며 전선이 너무 넓어지는 양상”이라고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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