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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대만, 아베 조문외교 신경전…서열 비교에 '타협 코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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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완강 중국 전국정협 부주석이 아베신조 일본 전 총리 국상이 열리는 도쿄 부도칸에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7일 완강 중국 전국정협 부주석이 아베신조 일본 전 총리 국상이 열리는 도쿄 부도칸에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7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일본 총리의 국장에서 중국과 대만이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중국은 부총리급 의전을 받는 완강(萬鋼) 전국 정협 부주석을 정부 대표로 파견했고, 대만은 아베 전 수상과 친분이 깊었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차녀 리안니(李安妮) 리덩후이 기금회 이사장과 전직 대만 입법원장(국회의장)을 역임한 쑤자취안(蘇嘉全) 현 대만일본관계협회 회장, 왕진핑(王金平) 전 대만 입법원장을 대표로 파견했다.

이날 국장 중 각국 대표단 헌화 의식 중 대만 대표단의 호칭도 관심을 모았다. 여성 사회자는 대만의 정식 명칭인 ‘중화민국’ 아닌 영문으로 ‘타이완’이라고 짧게 호명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2년 일본 정부가 거행한 3·11 동일본 대지진 추모식 당시 헌화 의식 땐 대만 대표를 별도로 배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사과를 표시했다고 대만 자유시보가 보도했다.

중국은 냉랭한 중·일 관계를 반영해 완강 부주석을 보낸 것으로 분석된다. 완 부주석은 중국공산당 당원이 아닌 중국의 이른바 ‘민주당파’의 하나인 치공당 주석으로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로 한·중 관계가 냉랭하던 지난 2017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식에 중국 측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아베신조 일본 전 총리 국상에 참석한 대만 대표단. 왼쪽부터 셰창팅(謝長廷) 타이베이주일경제문화대표처, 쑤자취안(蘇嘉全) 대만 일본관계협회 회장,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 자유시보 캡처

아베신조 일본 전 총리 국상에 참석한 대만 대표단. 왼쪽부터 셰창팅(謝長廷) 타이베이주일경제문화대표처, 쑤자취안(蘇嘉全) 대만 일본관계협회 회장,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 자유시보 캡처

중국은 앞서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과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국장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대리해 의전 서열 8위의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을 보냈다. 아베 국장에 이보다 실제 서열이 낮은 완강 부주석을 보낸 것은 “순수히 예의만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미국에 망명한 왕단(王丹)은 25일 페이스북에 “중국이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불만과 대만을 지지하는 일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며 “이는 일본을 모욕한 것이자 중일 관계가 거의 파열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중국과 대만의 국장 대표단 인선이 절묘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만이 파견을 원했던 대표단인 유시쿤(遊錫堃) 현직 입법원장의 파견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2002~2005년 천수이볜(陳水扁) 정부 시절 행정원장 출신으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유 입법원장 대신 전직 입법원장 두 명으로 일단 중국의 체면을 살려줬다는 해석이다. 중국도 왕치산 국가부주석 대신 의례상 부총리급 인물을 보내 주요국 요인 불참으로 구설에 오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의 체면을 살려줬다.

아베 국장을 원만하게 치른 중·일이 29일 수교 50주년 기념일을 어떻게 기념할지도 주목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지난 8월 17일 톈진(天津)에서 열린 양제츠(楊潔篪) 당 정치국원과 아키바 타케오(秋葉剛男) 국가안전보장국장의 ‘제9차 고위급 정치 대화’를 주목한다. 지난 2012년 총서기 취임 후 2019년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단 한 차례 실무 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기시다 총리의 화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자리였다는 분석이다. 만일 중·일 화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지난달 서울과 베이징에서 양국 정상의 축전을 각국 외교장관과 주중·주한 대사가 대독한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식보다 격이 높은 의전으로 중·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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