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뼈까지 녹인다'는 구미 불산 누출 10년..노후산단 사고는 계속된다

중앙일보

입력

2012년 9월 27일 CCTV를 통해 확인된 경북 구미 화공업체 불산가스 누출 당시 상황. 가스가 순식간에 누출되면서 작업자를 뒤덮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7일 CCTV를 통해 확인된 경북 구미 화공업체 불산가스 누출 당시 상황. 가스가 순식간에 누출되면서 작업자를 뒤덮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구미 불산사고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3분쯤 경북 구미시 산동면(현 산동읍) 구미산업단지. 이곳 한 업체 에 있는 20t짜리 탱크로리에서 뿌연 기체가 솟구쳤다. 탱크 위에 올라가 있던 근로자 1명의 얼굴과 몸은 순식간에 기체에 휩싸였다. 기체에 노출된 근로자를 비롯해 공장 직원 5명이 숨졌다. 탱크 바깥으로 누출된 이 기체는 플루오린화 수소 가스, 일명 ‘불산 가스’였다.

맹독성 모른 채 대처…주민 1만2000명 병원행

사고는 불산을 물에 희석시키기 위해 탱크에서 불산을 빼내는 작업을 하다 발생했다. 밸브와 호스를 연결하기 전 밸브와 호스 레버가 모두 잠긴 채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레버를 잠그지 않고 밸브와 마개를 여는 순간 불산이 기화해 뿜어져 나왔다. 이 사고로 누출된 불산은 약 8t으로 파악됐다.

사고 발생 직후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곧바로 현장에 출동하는 한편 경찰청과 구미시·대구지방환경청 등 관련기관에 사고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 40여 명과 소방관 180여 명이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방당국과 경찰은 화학약품을 취급하는 업체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반적 저장탱크 폭발·누출 사고로 생각했다.

불산 맹독성이 알려진 것은 출동 2시간 50여 분이 지난 오후 7시쯤이었다. 그 전까지 구조 요원들이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피했던 주민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등 초동대처가 미흡했다. 정부는 사고 발생 12일 만인 10월 8일 불산 누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불산은 벽돌 청소, 반도체 마이크로 칩 가공, 가죽 태닝, 알루미늄 생산, 소화기 제조 등 많은 산업분야에서 사용되는 약품이다. 부식성이 매우 강하고 유독성을 가진 무색의 액체다. 습기와 접촉하면 극도의 부식성 액체인 불화수소산을 형성하고, 다량 노출되면 인체 조직에 빠르게 침투한 후 전신 독성을 유발할 뿐 아니라 뼈를 녹이고 심장과 폐를 손상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산동면 봉산리에서 2012년 10월 8일 경북도 관계자들이 과수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산동면 봉산리에서 2012년 10월 8일 경북도 관계자들이 과수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출된 불산 가스는 업체 주변으로 번져 주민 1만2000여 명이 병원진료를 받고 121㏊ 규모의 농작물이 고사했다. 가축 4000여 마리도 폐사했다. 주민 보상액은 380억원에 달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도 예년 평균의 7배인 87건의 화학사고가 일어나면서 ‘화학물질관리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산단 중대사고 아직도 이어져

대한민국 화학물질사고 역사상 기록으로 남을 만한 구미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흘렀다. 불산 가스 누출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이 높아지고 유해화학물질 관리와 대응 체계를 명문화한 법도 제정됐지만, 전국 산업단지에서는 화재·폭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22일에는 전남 여수국가산단 금호화학석유에서 시클로헥산 등 액체 혼합물 가스가 유출돼 14명이 흡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31일엔 울산미포국가산단 SK지오센트릭 폴리머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원청 직원 4명과 협력사 직원 3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 5월 19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온산공단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폭발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9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온산공단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폭발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큰 사고의 절반 이상은 20년 이상 노후 산단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노후 산단을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전남 여수시을)이 한국산업단지공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산단 연혁별 중대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2월 현재까지 6년간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관리하는 64개 산단에서 산업재해, 화학사고, 화재·폭발사고 등 중대사고가 126건 발생했다. 이 중 조성 20년 이상 노후 산단의 중대사고가 123건이었다.

“노후 산단 안전·유지관리 특별법 필요”

이 기간 중대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230명으로 나타났다. 조성 20년 이상 노후 산단 사상자가 226명으로 전체의 98.3%를 차지했다. 반면 조성 20년 미만인 산단의 사상자는 4명에 그쳤다.

산업단지 중대사고 발생건수 및 인명피해. 자료 김회재 의원실

산업단지 중대사고 발생건수 및 인명피해. 자료 김회재 의원실

일각에선 사업주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도 산단 사업장 노후 설비 관리책임을 지도록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미YMCA는 “노후 산단 특성상 사고가 대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노후 산단과 시설은 특별하게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라며 “특별법 제정으로 정부·지자체·기업·시민 공동의 노력으로 안전한 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