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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이 77세 됐네…이 나이에 작가 데뷔, 친구야 멋지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아울러 지인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추천한 지인에게 ‘인생 사진’이 남다른 선물이 될 겁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이 또한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될 겁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열에서 다섯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수길, 박우현, 강휘,조영백, 이정국)이 모였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찾은 교정에서 그들은 이내 열셋, 열넷이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잔디에 뒹굴었습니다.

열에서 다섯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수길, 박우현, 강휘,조영백, 이정국)이 모였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찾은 교정에서 그들은 이내 열셋, 열넷이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잔디에 뒹굴었습니다.

이 글을 보내는 저는 대전에 거주하는 ‘강휘’ 라는 77세의 노인네입니다

제 친구 중에 75세에 소설을 출간한 용기 있고 글재주가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의 벗 ‘이정국’ 은 중동 붐인 시절에 이란 및 사우디에서 건설의 역군으로 청춘을 보냈습니다. 이후에도 무슨 역마살이 끼었는지 20여 년째 태국에서 사업을 하며 늙어가더니 75세가 되는 해에는 소설까지 발간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네요.

이 친구가 소설을 발간했다며 귀국을 했을 때는 친구들이 모여 조촐하게 출판 기념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정국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우리는 어린 중학교 시절에 만나 영원히 우정을 변치 말자고 ‘설죽’ 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칙도 만들고 했죠.

그렇게 호들갑을 떤 지가 어언 65년이 되었는데요. 휘문학교에서 13살, 14살에 만나 어느덧 80으로 치닫고 있는 요즈음, 삶의 막바지라는 절박함과 끈끈한 우정의 끈도 놓아야 하는 절박함이 함께 다가오고 있기에 더욱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친구 이정국이 2쇄 출간을 위해 귀국을 한다고 합니다. 이에 저 또한 용기를 내어 벗 10명이 일생 함께해 온 우정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 주십사 요청합니다.

10명의 꼬맹이가 벗이 된 지 65년이 지나면서 두 명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또 한 명은 캐나다로 이주했는데 교민회를 통하여도 소재 파악이 안 되네요. 날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벗이 늘어나네요.

한층 더 그리워지는 벗들의 우정을 인생 사진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아울러 75세에 작가가 된 이정국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설죽 모임을 대표하여 강휘 보냄


65년 우정을 움트게 한 '휘문'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겐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65년 우정을 움트게 한 '휘문'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겐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65년 우정을 잇고 있는 친구들을 ‘휘문학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우정이 비롯된 곳이니까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들뜬 소년이 된 이정국 작가가 휘문중학교에서의 첫 만남을 추억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 손에 끌려 낚시를 갔어요.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그런데 낚시터에서 같은 학교 박용근을 만나고, 그다음엔 또 다른 친구를 만나고 그랬어요. 참 희한한 우연이었죠. 월요일에 학교 가서는 많이 잡았냐, 어땠냐 등등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친해졌어요. 여기서 시작되어 각각의 친한 친구들이 모이게 된 겁니다. 그렇게 열 명이 되었어요. 우리 열 명이 중학교 3학년 마칠 즈음 쌀 들고 소사에 있는 저수지로 갔어요. 저녁에 비 오고, 아침에 저수지가 얼 정도였기에 죽도록 고생했는 데도 좋기만 했어요. 그렇게 어울려 낚시, 등산도 다니며 우정을 쌓았죠. 가장 신기한 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함께 어울렸다는 거예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청소에 걸린 애들이 있잖아요. 꼭 걔들을 기다렸다가 다 모이면 함께 걸어서 집에 갈 정도였어요. 뭐가 그리 좋았던지….”
“설죽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얀 눈처럼 순수하고 대처럼 꼿꼿하게 가자는 의미입니다. 하하하”
'설죽'은 하얀 눈처럼 순수하고 대처럼 꼿꼿하게 살자는 의미입니다. 하얀 눈은 없지만, 하얀 머리의 그들이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오늘을 기념합니다.

'설죽'은 하얀 눈처럼 순수하고 대처럼 꼿꼿하게 살자는 의미입니다. 하얀 눈은 없지만, 하얀 머리의 그들이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오늘을 기념합니다.

“당시 회칙도 만들었다면서요.”
“그랬죠. 한 달에 한 번씩 각자 집을 돌면서 회의를 정례적으로 했죠. 각 집 어머님들이 먹을 것도 내오고요. 재미있었던 건 사연 보낸 강휘라는 친구가 모임을 함께하고 싶다며 요청을 했는데 지금 미국에 있는 친구가 적극적으로 반대했어요. 강휘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요. 우여곡절 끝에 강휘가 우리 모임에 합류했는데 그때부터 강휘 키가 확 커버렸어요. 급기야 강휘가 그 친구보다 훨씬 더 커버렸어요. 아마 지금은 우리 중에 미국 친구가 키가 제일 작을걸요. 하하하”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청소 당번이든 아니든, 늘 함께 다녔습니다. 이랬든 저랬든 다 친구니까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청소 당번이든 아니든, 늘 함께 다녔습니다. 이랬든 저랬든 다 친구니까요.

한창 클 나이에 좌충우돌했던 에피소드는 쉼 없이 이어집니다. 놀랍게도 이정국 작가는 모든 친구의 65년 전 집 주소를 아직 기억합니다. 이런 기억력을 가진 이정국 작가의 추억 되새김은 생생합니다.

“누가 통행금지에 걸리거나 혹은 다툼으로 경찰서에 잡혀 있으면 우리가 몰려가 보증서서 데려 나오곤 했어요. 크리스마스 때는 이화여대생들과 파티도 했고요. 그때 이야기들을 제 소설에 녹여 넣었죠. 처음엔 이 친구들의 실명을 넣고자 했는데 하나같이 극구 반대하여 가명으로 넣었어요. 집에서 쫓겨난다나 어쨌다나 하니 이름을 바꿔줬죠. 이 나이에도 쫓겨날까 걱정을 하다니…. 원 참. 하하하”
“그나저나 일흔다섯에 어떻게 소설을 쓸 생각을 하셨습니까?”
“꿈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우리끼리 일기장을 써서 모았어요. 6개월에 한 번씩 일기장을 묶어서 돌려보고 그랬어요. 제가 이란에 있을 땐, 천이백 명의 한국인에게 현장에 돌아가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보를 만들었어요. 그때는 컴퓨터가 안 나왔을 때거든요. 수동 타자기로 쳐서 그것을 복사해 만들었죠. 나중엔 중앙문화센터에서 시문학 수업을 8개월을 다녔고요. 오랜 꿈이었습니다. 하하”
친구들은 일흔다섯에 소설 『끝나지 않은 첫사랑』을 펴낸 이정국 작가가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거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책과 함께 기념사진을 자랑스레 남겼습니다.

친구들은 일흔다섯에 소설 『끝나지 않은 첫사랑』을 펴낸 이정국 작가가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거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책과 함께 기념사진을 자랑스레 남겼습니다.

“친구들이 출판기념회를 해줬다면서요.”
“제 책이 나오는 날, 저녁 먹자며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우리끼리 출판기념회라더라고요. 거기서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야! 난 네 덕에 사위한테 체면이 섰어. 우리 친구 중에 소설가도 있으니….”  또 한 친구는 “야! 내가 며느리한테 체면이 섰어.” 이러더라고요.”

일흔다섯에 책을 낸 친구가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겁니다.
그러니 그 용기에 너나없이 축하해준 겁니다.

어느덧 여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둘은 이미 하늘로 먼저 갔고, 하나는 소식조차 모릅니다. 미국에 있는 친구와 사업차 바쁜 친구는 부득이 빠졌습니다만, 그래도 이들은 우정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어느덧 여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둘은 이미 하늘로 먼저 갔고, 하나는 소식조차 모릅니다. 미국에 있는 친구와 사업차 바쁜 친구는 부득이 빠졌습니다만, 그래도 이들은 우정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소설을 일흔다섯에 쓴 이정국 작가의 소설책 제목은 『끝나지 않은 첫사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공유하며 예순다섯해를 이어온 친구들의 녹진한 우정을 소설로 쓴다면 제목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짐작이 갑니다.
아마도 ‘끝나지 않은 우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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