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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서 죽으면 죄 다 씻긴다"…'푸틴 측근' 키릴 총대주교 파문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76) 총대주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 동원령’을 옹호하고 우크라이나 참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일고 있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그가 소속된 러시아 정교회는 3대 기독교 분파(천주교·개신교·동방정교회) 중 하나인 동방정교회의 가장 큰 교파다.

"전쟁에서 죽으면, 모든 죄 씻어준다"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에서 부활절 예배를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는 고대 율리우스 달력에 따라 4월 24일에 정교회 부활절을 축하했다. AP=연합뉴스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에서 부활절 예배를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는 고대 율리우스 달력에 따라 4월 24일에 정교회 부활절을 축하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소타, 미국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약 30만 명을 소집한다는 내용의 '부분 동원령'을 발동한 뒤부터 예배 도중 참전 촉구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군 동원령이 내려진 당일 예배 시간에 "용맹하게 (전쟁터로) 가서 병역 의무를 다하라"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설교했다.

이어 25일 주일예배 때는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며 "이 희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죄는 씻긴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전역에서 군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종교 지도자가 '신의 뜻'을 빌어 전쟁 지지 발언을 이어가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BBC 모니터링팀의 프란시스 스칼은 소셜미디어(SNS)에 키릴 총대주교 연설 동영상을 올리며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의 동원령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라고 일갈했다. 네티즌들은 "키릴 총대주교를 최전방으로 보내 그의 죄를 씻게 해주자"고 비꼬았다.

푸틴 지지자 "우크라 전쟁은 신성한 투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가운데)이 지난 2020년 6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 새로 문을 연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방문해 키릴 총대주교와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가운데)이 지난 2020년 6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 새로 문을 연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방문해 키릴 총대주교와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정교회 신자는 러시아 내에만 약 1억 명에 달한다. 키릴 총대주교는 수많은 신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푸틴 대통령에게 도덕적·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사실상 거들어왔다.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서방에 맞서는 ‘신성한(Sacred) 투쟁’이라면서 "신은 거짓된 서구 자유의 세계가 아닌 러시아의 편"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러시아군에게는 "영웅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부추겼다.

실제로 그는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꼽힌다. 그는 2012년,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대해 ‘신의 기적’이라 칭송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 4월 키릴 총대주교에게 ‘정부와 생산적 협력 관계를 진전시킨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해 긴밀한 사이임을 인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 정권하에서 교회 재건을 위한 자금 수천만 달러는 지원 받는 등 혜택을 누렸다"면서 "키릴 총대주교도 살아남기 위해 푸틴 대통령과 협력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푸틴 복사되어선 안돼"

키릴 총대주교가 지난 4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에서 부활절 예배를 집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키릴 총대주교가 지난 4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에서 부활절 예배를 집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키릴 총대주교의 노골적인 친(親) 푸틴 행보에 종교인들의 비난도 거세다.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초 키릴 총대주교에게 “푸틴의 복사(服事·사제 등을 보조하는 평신도)가 돼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놨다.

러시아 정교회 산하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지난 5월 말 "키릴 총대주교의 전쟁에 관련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미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정교회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키릴 총대주교에게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방에서도 그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푸틴의 동지로 분류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6월 키릴 총대주교를 대(對)러시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6차 제재안 초안에 키릴 총대주교를 포함시켰지만. 헝가리의 반대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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