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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시각각

"XX 자식"이라던 이해찬의 재등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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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에디터

최민우 정치에디터

이해찬(70) 전 민주당 대표가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를 최근 펴냈다. 최민희 전 의원과의 대담 형식인데, 본인의 학생·재야운동 시절부터 1988년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과정을 560여 쪽에 담았다. 정작 눈길을 끈 건 지난 3월 대선을 분석한 에필로그였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 패배 이유로 "이익 투표, 계급 투표 경향이 강화됐다"며 "부동산이라는 물질적 욕망이 깔려 있고, 의식도 보수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득권 카르텔이 똘똘 뭉쳐 (이재명을) 공격했다"며 "검찰, 언론, 관료 집단을 부유층, 기득권층의 2세들이 차지했다. 한동훈 같은 인물이 그 카르텔의 중심"이라고 했다. 아니 7선 의원을 지내며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여당 대표 등 30여 년간 권력의 최정점에 있어 온 '정치인 이해찬'보다 더 센 기득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니 당장 "이 나라의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라고 역공을 당하는 거다.

이해찬계 민주당 주류로 부상하고 #회고록에서 '이재명 중심으로' 옹호 #자신의 거친 말은 반성없이 모른척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재명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재명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전 대표는 22일 유튜브 ‘알릴레오’에 나와서는 또 다른 패배 원인으로 절박성 부족을 꼽았다. 그는 “이번에 꼭 이겨야 한다는 절실함이 저쪽(국민의힘)에 더 많았다”며 “자기들이 탄핵으로 (정권을) 빼앗겼다고 봐서 되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간절했다. 우리가 어처구니없이 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회고록에서 "너무 아까운 후보다. 정치권에 이 후보처럼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쪽의 비리 의혹은 증거가 나와도 검찰이 수사하지 않고 언론은 외면했다"며 "반면에 이 후보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의혹을 부풀렸다"고 말했다. "당은 이재명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도 했다. 이 대목이 회고록에서 진짜 말하고 싶은 부분으로 읽혔다.

2018년 9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연했던 '이해찬-이재명' 연대설은 이재명 체제에서 이해찬계가 주류가 되면서 공인됐다. 이해찬 전 대표 조직인 '광장'을 대선 때 이재명 대표 지지 조직으로 재편했던 조정식 의원은 사무총장이 됐고, 이 전 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성환 의원은 정책위의장에 유임됐으며, 2018년 이해찬 대표 시절 대변인이었던 이해식 의원은 조직사무부총장이 됐다.

또 둘의 관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현 킨텍스 대표이사)씨다. 회고록에서 밝혔듯 이 전 대표가 2006년 북한을 방문할 때 같이 갈 만큼 이씨는 '이해찬의 최측근'으로 불렸다. 이 대표가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되고, 없던 평화부지사 자리를 만들어 이화영씨에게 준 건 '당내 비주류로서 이해찬 대표를 포섭하려는 구애'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이씨는 현재 쌍방울로부터 4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이 전 대표는 '버럭 총리'로도 유명하다. 회고록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악역을 자처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과연 그럴까. 이 전 대표 성품이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2년 전 있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 추문에 휩싸여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 전 대표는 여당 대표로 조문했는데, 빈소에서 한 기자가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 차원의 대응을 할 것이냐"고 묻자 "그런 걸(질문을)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느냐"고 불같이 역정을 냈다. 해당 기자를 몇초간 노려보고는 그걸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자리를 떠나며 "XX 자식 같으니라고"라고 했다. 이게 다 공개석상에서 이뤄졌고, 막말은 생중계되듯 전파됐지만 'XX 자식'에 대해 이 전 대표는 그 후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물론 회고록에서도 이때 일화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랬던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비공개석상에서 혼잣말로 '이 XX'라고 말한 일종의 해프닝을 두고 거품을 물며 공격하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정치란 뻔뻔해야 오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