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박물관 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인 만국박람회가 열린다. 모든 국가의 산업품을 전시한다는 취지로 야심 차게 개최한 행사는 600만 명 넘게 관람했다. 당시 영국 인구 3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영국은 박람회에 출품된 뛰어난 공예품과 디자인 작품을 전시해 대중을 교육하고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겠다는 취지로 1852년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뮤지엄을 설립한다.

영국박물관과 함께 런던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히는 V&A에서 지난 24일 ‘한류(HALLYU! THE KOREAN WAVE)’ 특별전이 개막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가 수십 년 사이에 음악·영화·드라마·패션과 뷰티 등을 전 세계에 전파하게 된 다이내믹한 성장사를 보여주는 자리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 문화에 대한 즐겁고 현란한 기념”이라 평하며 별점 5점 만점을 줬다. 1970년대 압구정 아파트를 배경으로 농부가 소 끌고 밭 갈던 풍경부터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K팝 스타의 의상과 응원봉, 드라마 ‘오징어 게임’ 코스튬,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변기 세트장 등이 나왔다. 한류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부문에서 약진해왔음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이번 전시 역시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니다. 1888년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조선 유물을 둘러보고 “구비된 것이 일본박물관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감을 『미행일기(美行日記)』(푸른역사)에 남겼다. 그런 상황은 100년 넘게 이어졌다. 한국 정부가 문화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외 박물관에 한국실을 설치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다(『한국외교 60년』).

1992년 V&A에 40여평 규모의 삼성관(한국실)이 설치됐다. 2012년엔 삼성전자UK의 후원으로 첫 정규직 한국관 큐레이터 자리가 생겼다. 당시 채용된 로잘리 킴(한국명 김현경)이 이번 한류 전시 기획자다. 그럼에도 중국·일본실에 비해 초라하다는 평이 많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사업의 하나로 V&A에 2021년부터 5년간 20억원 예산을 편성했다. 일부는 이번 전시에 투입됐다. 박물관 한국실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자랑하고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공간이다. 이렇게 쓰이는 세금은 아깝지 않다.

한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사진=연합뉴스

한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사진=연합뉴스

한류 전시에 출품된 작품. 사진 V&A

한류 전시에 출품된 작품. 사진 V&A

한류 전시관 모습. 오징어게임 코스튬과 한복, 책가도 병풍 등이 보인다. 사진 V&A

한류 전시관 모습. 오징어게임 코스튬과 한복, 책가도 병풍 등이 보인다. 사진 V&A

V&A 한류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 Photo by Vianney Le Caer/Invision/AP=연합뉴스

V&A 한류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 Photo by Vianney Le Caer/Invision/AP=연합뉴스

한류 전시에 나온 미인도 병풍. 사진 V&A

한류 전시에 나온 미인도 병풍. 사진 V&A

기생충의 반지하 세트 전시물을 관람하는 관객. Photo by Vianney Le Caer/Invision/AP=연합뉴스

기생충의 반지하 세트 전시물을 관람하는 관객. Photo by Vianney Le Caer/Invision/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