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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이숙경 감독 “테이트 모던서 쌓은 경험 다 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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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숙경 테이트 모던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맡은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국계 가나 작가 래리 아치암퐁(38)의 영상작품 ‘성유물함 2’의 한 장면.

이숙경 테이트 모던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맡은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국계 가나 작가 래리 아치암퐁(38)의 영상작품 ‘성유물함 2’의 한 장면.

아시아 최대 현대미술 축제로 꼽히는 광주비엔날레가 내년 4월 7일 개막을 앞두고 참여 작가 등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내년에 열리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94일간 이어지며, 세계 30개국 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이숙경

이숙경

지난해 12월 선임된 예술감독(이하 감독)은 한국 출신의 영국 테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 이숙경(53)씨다. 광주비엔날레의 한국인 감독은 2006년 김홍희 감독 이후 15여 년 만에 처음이다. 이 감독은 2007년 테이트 리버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테이트 모던에서 근무해왔다. 런던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은 영국 최대 공립미술관이자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통한다. 최근 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국제무대에서 광주비엔날레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명실상부한 아시아 대표 비엔날레다. 아시아 여러 도시에 다른 비엔날레도 있지만, 광주만큼의 국제적 위상은 아니다. 이번에 그 위상을 더 굳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가 특이하다.
“ ‘도덕경’ 78장에 나오는 ‘유약어수(柔弱於水)’란 말에서 빌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물이지만 그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이겨나가는 데 예술이 물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도 담았다.”
산 살바도르 난민 출신으로 뉴욕에서 작업하는 시각예술가이자 안무가 과달루페 마라비야(46)의 작품 ‘질병투척기’.

산 살바도르 난민 출신으로 뉴욕에서 작업하는 시각예술가이자 안무가 과달루페 마라비야(46)의 작품 ‘질병투척기’.

이번 비엔날레에는 세계 각국에서 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여성 작가의 비중이 절반이다. 이 감독은 “출품작의 40% 이상은 신작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

신작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을 펼쳐놓고 자부심을 가질 순 없다. 광주비엔날레를 세계 작가들이 신작을 공개하는 ‘프리미어(premier)’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 또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일 자체가 작가에게도 좋은 기회가 돼야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신작 요청을 거절한 작가는 없었다(웃음).”
어떤 작가들인가.
“우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전지구적 이슈와 연결되는 것임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거다. 또 지역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가들,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이 참여한다.”
싱가포르 태생의 여성 작가 킴 림(1936~1997)의 작품 ‘물 연작’.

싱가포르 태생의 여성 작가 킴 림(1936~1997)의 작품 ‘물 연작’.

이 감독은 “무엇보다 관람객이 작가들 이야기를 가까이서 듣고 체험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산문보다는 시(詩的)를 닮은 큰 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홍익대에서 예술학과(학·석사)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시티대에서 석사, 에식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를 맡았고, 2019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을 기획했다.

지금 테이트에서 하는 일은.
“전시 기획도 하지만 기업의 R&D(연구개발) 같은 일을 해왔다. 세계의 변화를 읽고 미술관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연구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 연구가 비엔날레 기획에도 영향을 미쳤나.
“물론이다. 지난해 12월 감독으로 선임돼 제일 먼저 고민한 게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일까’였다.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환경·젠더·식민주의 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연구를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다 담길 거다.”

탈식민주의와 생태·환경 등을 중시한 이번 비엔날레엔 일본 아이누족 작가, 카자흐스탄 여성 예술가, 호주 토착민 지역사회의 원로 작가 등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한국 작가는 전체 참여 작가 중 17% 정도다. 강연균·김기라·김민정·김순기·오윤·장지아 등 근현대 한국작가를 폭넓게 아우른다. 이 감독은 “1970년대 한국 전위미술을 이끈 김구림·이승택·이건용 작가를 관객 참여형 작업을 통해 재조명할 것”이라고 했다.

‘비엔날레 전시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작품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게 전달하는 게 문제일 수 있다. 테이트에선 큐레이터들에게 ‘전시는 9세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자꾸 생각나는 전시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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