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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에서 쌓은 역량, 광주비엔날레에서 펼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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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이숙경 테이트 모던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사진 광주비엔날레]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이숙경 테이트 모던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사진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최대 현대미술 축제로 꼽히는 광주비엔날레가 내년 4월 7일 개막을 앞두고 참여 작가 등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내년에 열리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94일간 이어지며, 세계 30개국 8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런던 테이트 모던 수석 큐레이터 #15년 만에 선임된 한국인 예술총감독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30개국 80명 작가로 윤곽 정해

내년 광주비엔날레는 여느 해보다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선임된 예술감독(이하 감독)이 한국 출신의 영국 테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 이숙경(53) 씨라는 점에서다. 런던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은 영국 최대 공립미술관이자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통한다.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감독이 어떻게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하고, 또 동시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광주비엔날레의 한국인 감독은 2006년 김홍희 감독 이후 15여 년 만에 처음이다.

이 감독은 2007년 테이트 리버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테이트 모던에서 근무해왔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를 맡았고, 2019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을 기획했다. 최근 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내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선정된 크리스틴 선 킴의 설치작품 '모든 삶의 기표'. [사진 광주비엔날레]

내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선정된 크리스틴 선 킴의 설치작품 '모든 삶의 기표'. [사진 광주비엔날레]

과달루페 마루비야 작가의 작품 '질병 투척기'. JSP Art Photography. [사진 광주비엔날레]

과달루페 마루비야 작가의 작품 '질병 투척기'. JSP Art Photography. [사진 광주비엔날레]

일본 작가 모리 유코의 키네틱 조각. [사진 광주비엔날레]

일본 작가 모리 유코의 키네틱 조각. [사진 광주비엔날레]

이번에 감독을 맡은 소감은.  
제가 광주비엔날레를 보며 공부한 세대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고 정말 잘해내고 싶다.  
국제무대에서 광주비엔날레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명실상부한 아시아 대표 비엔날레다. 아시아 여러 도시에 다른 비엔날레도 있지만, 광주만큼의 국제적 위상은 아니다. 이번에 그 위상을 더 굳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가 특이하다.  
" ‘도덕경’ 78장에 나오는 ‘유약어수(柔弱於水)’란 말에서 빌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물이지만 그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이겨나가는 데 예술이 물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도 담았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세계 각국에서 8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여성 작가의 비중이 절반이다. 이 감독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80% 이상의 작가가 여성이었지만, 서유럽과 미주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며 "제가 광주에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설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출품작의 40% 이상은 신작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

[사진 광주비엔날레]

[사진 광주비엔날레]

내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소개될 킴 림(1936~1997)의 청동 작품. [사진 광주비엔날레]

내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소개될 킴 림(1936~1997)의 청동 작품. [사진 광주비엔날레]

한국 작가인 엄정순의 '방 안의 코끼리'. [사진 광주비엔날레]

한국 작가인 엄정순의 '방 안의 코끼리'. [사진 광주비엔날레]

신작에 방점을 찍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을 펼쳐놓고 자부심을 가질 순 없다. 광주비엔날레를 세계 작가들이 신작을 공개하는 '프리미어(premier)'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 또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일 자체가 작가에게도 좋은 기회가 돼야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신작 요청을 거절한 작가는 없었다(웃음).  
어떤 작가들인가.  
우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전지구적 이슈와 연결되는 것임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거다. 또 지역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가들,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이 참여한다.  

이 감독은 "그동안 비엔날레 같은 큰 전시는 관람하기에 벅찬 면이 없지 않았다"며 "이번 비엔날레는 무엇보다 관람객이 작가들 이야기를 가까이서 듣고 체험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산문보다는 시(詩的)를 닮은 큰 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사진 광주비엔날레]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사진 광주비엔날레]

이 감독은 홍익대 예술학과(학·석사)를 졸업하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를 거쳤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시티대에서 석사, 에식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 테이트에서 하는 일은.  
전시 기획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업의 R&D(연구개발)같은 일을 해왔다. 세계의 변화를 읽고 미술관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연구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언뜻 애매해 보이는 역할이지만, 이 연구가 미술관의 전시·세미나·소장품 선정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그 연구가 비엔날레 기획에도 영향을 미쳤나.  
물론이다. 제 연구와 경험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지난해 12월 감독으로 선임돼 제일 먼저 고민한 게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일까'였다.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환경·젠더·식민주의 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연구를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다 담길 거다. 

탈식민주의와 생태와 환경 등을 중시한 이번 비엔날레엔 일본 아이누족 작가, 카자흐스탄 여성 예술가, 호주 토착민 지역사회의 원로 작가, 싱가포르 출신의 영국 활동 예술가 등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한국 작가는 전체 참여 작가 중 17% 정도다. 강연균, 김기라, 김민정, 김순기, 오윤, 장지아 등 근현대 한국작가를 폭넓게 아우른다. 이 감독은 "1970년대 한국 전위미술을 이끈 김구림, 이승택, 이건용 작가를 관객 참여형 작업을 통해 재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엔날레 전시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공공 미술관 전시도, 비엔날레 전시도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 이해하고 즐겨야 한다. 작품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게 전달하는 게 문제일 수 있다. 테이트에선 큐레이터들에게 '전시는 9세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자꾸 생각나는 전시를 만들고 싶다.    
미술관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바깥 일을 할 때 항상 허가를 받긴 하지만 미술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학술대회는 테이트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광주'라는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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