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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25 난민 외면 못했다…200만명 돌본 스웨덴병원 다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상 터진 6·25 피란민, 야전병원은 외면 못 했다 

6.25전쟁 당시 스웨덴 의료진 활약상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선을 보인다. 스웨덴에서 온 의료진 수백명이 부산에 병원을 차리고 군인과 민간인 등 200만명을 돌본 과정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부산영화제나 방송 등에서 방영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다음 달 16일 부산 남구에서 열리는 '유엔평화축제'폐막식 현장에서 상영한다.

스웨덴 의료진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6·25전쟁 비극이 부산까지 뻗쳤던 1950년 9월 23일. 스웨덴에서 온 군함 한척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 배에서 내린 스웨덴 사람 남여 150여명은 트럭에 올라 북쪽으로 10㎞ 떨어진 하야리아 부대(Hialeah·부산시민공원)를 향했다.

이들은 스웨덴 정부가 한국에 인도적 지원을 결정하면서 파견된 의료 인력이었다. 도착 이틀 뒤 미군 부상병 68명을 치료했다. 이들은 이후 유엔군 사령부의 병상 증설 요구에 따라 거점을 부산상업고등학교 쪽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진찰실과 수술실 등을 갖춘 스웨덴적십자야전병원을 차렸다.

 6·25전쟁 당시 부산 서전병원에서 스웨덴 의료인력이 한국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 부산 남구

6·25전쟁 당시 부산 서전병원에서 스웨덴 의료인력이 한국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 부산 남구

겨울이 되자 무너진 피란수도 부산에 한파가 닥쳤다. 야전병원 의료인들은 동상에 터진 상처를 동여매고 병원문을 두드리는 피란민을 외면하지 못했다. 이들 속에는 북한군과 중공군도 있었지만, ‘적십자’ 이름으로 중립국 스웨덴이 운영한 야전병원은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

1954년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야전병원은 명칭을 ‘부산 스웨덴 병원’으로 바꾼 뒤 피란민이 밀집한 부산 수산대(부경대)로 거점을 옮겨 민간인 치료에 집중했다. 당시 병원은 스웨덴의 한자식 표기를 따 ‘서전(瑞典)병원’이라고 불렸다. 최초 파견으로부터 1957년까지 6년 6개월간 스웨덴에서 112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위생병·봉사자가 이곳에 근무했고, 민간인과 군인 등 도합 200만명이 치료를 받았다. 서전병원 철수 이수에도 스웨덴은 노르웨이·덴마크와 함께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을 세워 공공의료 지원에 힘썼다.

병원 존재 안 2성 장군 “반드시 기록돼야”

스웨덴 의료인력은 6·25 당시 인도적 목적으로 의료지원단을 보낸 5개 국가(스웨덴·인도·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 지원단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 도착했다. 파견 인력은 물론 치료받은 한국의 피란민까지 서전병원의 헌신을 기억했지만, 이 같은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6·25전쟁 때 부산에 차려진 서전병원의 모습. 사진 부산 남구

6·25전쟁 때 부산에 차려진 서전병원의 모습. 사진 부산 남구

스웨덴의 라르스 프리스크 장군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2004년부터 3년간 중립국 감독위원회 스웨덴 대표부 자격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던 중 서전병원에 대해 알게 됐다. 당시 2성 장군이던 프리스크 장군은 “이 이야기는 전란 속에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돌봤던 서전병원 의료인에 대한 기억이자, 한국과 스웨덴이 맺게 된 우정의 출발점과도 같은 것이었다. 반드시 제대로 기록되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프리스크 장군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대사관을 통해 서전병원에 관련된 문서와 사진을 구하는 일에 집중했다. 서전병원에서 근무했던 이들을 찾으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니헤테’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58명과 연락이 닿았다. 대부분 90세를 넘긴 고령이었고, 치매를 앓는 경우도 있었지만 프리스크 장군은 이들 가운데 20명을 직접 인터뷰해 서전병원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프리스크 장군은 1953년 병원에 근무했던 앨리스 올센 간호사의 일화를 소개했다.
앨리스 간호사는 군용차에 치어 병원에서 다리 절단 수술을 한 뒤 나무 의족을 맞춰 간 한국인 소년 ‘사보’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7년 9월 부산에서 열린 ‘서전병원 사진전’에 노인이 된 사보가 찾아왔다. 그의 본명은 박만수로, 박씨는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 이름이 ‘라르스 미렌’이라는 사실까지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서저병원 의료진들이 환자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스웨덴 대사관

6·25전쟁 당시 서저병원 의료진들이 환자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스웨덴 대사관

5년 만에 제작된 다큐, 국내엔 상영처가 없다
프리스크 장군이 예편 이후 스웨덴군 기록영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으며 서전병원 다큐멘터리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큐멘터리 가제는 ‘잊지 말자'였고, 제작을 위해 피터 노드스트롬 감독과 재단 산하 제작사인 ‘아카’ 관계자들이 5년간 한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서전병원에 얽힌 일화들을 추적, 수집했다. 다큐멘터리는 2019년 ‘한국전과 스웨덴 사람들(The Swedes in the Korean War)’이라는 제목으로 완성됐다. 60분 분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1월 스웨덴국영방송 SVT를 통해 스웨덴 전역에 방영됐다.

 6·25전쟁 때 부산 서전병원에서 치료받은 아이들과 병원 관계자. 사진 스웨덴 대사관

6·25전쟁 때 부산 서전병원에서 치료받은 아이들과 병원 관계자. 사진 스웨덴 대사관

프리스크 장군은 “인터뷰에 응한 당시 의료진들은 '그저 좋은 변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아무런 인연도 없는 한국행을 지원했다'고 한다"며 "서전병원 의료진 마음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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