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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더 세게 때리는 태풍…뜨거운 바다, 발생지 밀어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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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31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관측한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모습. NASA

지난달 31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관측한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모습. NASA

태풍이 달라지고 있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져 더 큰 바람을 몰고, 더 많은 비를 뿌리고 있다. 과거보다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는 말이다.

[기후 뉴노멀-上] 뜨거운 바다의 역습

지난 6일 한반도 남단에 상륙했던 제11호 태풍 힌남노. 지난달 28일 북위 26.9도에서 탄생했다. 북위 25도보다 북쪽에서 발생한 첫 초강력 태풍, 이른바 '슈퍼 태풍'이었다. 초강력 태풍은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이 초속 54m(시속 194㎞)를 넘어서는 경우다.

발생 위치 10년마다 40㎞씩 북쪽으로

제14호 태풍 '난마돌'이 북상한 19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해안에 너울성 파도가 방파제를 넘고 있다. 뉴스1

제14호 태풍 '난마돌'이 북상한 19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해안에 너울성 파도가 방파제를 넘고 있다. 뉴스1

태풍 힌남노처럼 북쪽 해역에서 생겨나는 태풍은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 레딩대 연구팀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서 태평양의 태풍 발생 위치와 가장 세력이 커졌을 때의 위치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979~2018년 사이 태풍의 이동 경로 자료를 분석했는데, 태풍의 발생 위치는 10년마다 40㎞씩, 가장 세력을 키웠을 때 위치는 10년마다 61㎞ 북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태풍 이동 경로 자체도 약 78㎞씩 북쪽으로 이동했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과거보다 북쪽에서 태풍이 발생하는 경우가 늘어나 전체적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전체 태풍이 북쪽으로 이동하기보다는 6~9월에 발생하는 태풍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북서 태평양의 태풍 이동 경로가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7~9월에 발생하는 태풍의 전체 이동 경로 평균치가 북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한 반면, 10~12월에 발생하는 태풍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7~9월에 더 많은 태풍이 발생하기 때문에 연간 전체로는 태풍 경로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서 태평양의 태풍 이동 경로가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7~9월에 발생하는 태풍의 전체 이동 경로 평균치가 북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한 반면, 10~12월에 발생하는 태풍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7~9월에 더 많은 태풍이 발생하기 때문에 연간 전체로는 태풍 경로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해 12월 미국 예일대와 프랑스 소르본 대학 연구팀은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1982~2012년 사이 태풍·허리케인 등 열대성 저기압의 ‘생애 중 최대 강도(LMI)’를 보이는 위치가 북반구에서는 10년에 53㎞ 북쪽으로, 남반구는 62㎞씩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 저자인 예일대 해양대기과학 교수 알렉세이 페도로프는 “앞으로 중위도 지역에서 더 많은 열대성 저기압을 보게 될 것을 나타내는 다양한 증거가 있다”며 “지구온난화 속에서 열대성 저기압과 관련된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숫자 줄어도 초강력 태풍은 늘어

지난 2003년 한반도에 상륙에 큰 피해를 냈던 태풍 매미. [NASA]

지난 2003년 한반도에 상륙에 큰 피해를 냈던 태풍 매미. [NASA]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 빈도가 주는 대신 세력이 평균적으로 강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지난 6월 호주·미국 연구팀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그 이후(1901~2000년)를 비교할 때 전 세계 열대성 저기압 발생 빈도는 13% 줄었다”고 밝혔다. 북서 태평양의 경우 1901~1950년과 1951~2010년을 비교하면 태풍 발생 빈도가 15% 감소했다. 태풍은 1991~2020년 사이 연평균 태풍 발생 횟수(25.3개)가 1981~2010년 평균(25.6개)이나 1971~2000년 평균(26.7개)보다 약간 감소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인 문일주 교수는 “발생하는 태풍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태풍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열대 해역에서 대기가 안정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온도 상승하지만, 온난화로 대기 상층 기온 역시 크게 오르면서 대기 상하층이 안정화되고 태풍의 에너지인 상승 기류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차가운 공기를 접촉해 응결하면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것이 태풍 에너지원이 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다만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초강력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영호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팀장은 “수온이 높다는 건 그만큼 태풍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수증기량이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라며 “2020년 가장 강력한 태풍 단계인 초강력 등급을 신설한 것도 앞으로 더 강한 태풍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비 쏟아내

2002년 한반도에 폭우를 쏟아낸 태풍 루사. 하루 동안 870.5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NASA]

2002년 한반도에 폭우를 쏟아낸 태풍 루사. 하루 동안 870.5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NASA]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더 짧은 시간에 열대성 저기압이 세력을 크게 키우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열대성 저기압의 이동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강풍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열대성 저기압이 몰고 오는 비의 양이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인터내셔널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전 세계 열대성 저기압을 대상으로 1998~2016년 사이 강우율을 분석한 결과, 해마다 시간당 0.027㎜씩 늘어났다”고 밝혔다. 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한 강우율(rain rate)이 연평균 1.5%씩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대기가 포함할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은 7% 증가한다.

‘수퍼 태풍’에 생기는 이중 구름벽 그래픽 이미지.

‘수퍼 태풍’에 생기는 이중 구름벽 그래픽 이미지.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2도 상승할 경우 열대성 저기압의 강우율이 현재보다 14%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연구팀의 분석 결과, 지난 19년 동안 열대성 저기압의 강우율이 전 세계 평균으로는 21% 이상 증가했고, 북반구는 더 많이 증가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14호 태풍 난마돌의 영향으로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8개 관측점에서 하루 강수량이 500㎜를 초과했다. 미야자키 현 에비노시 관측점에는 24시간 강수량이 725.5㎜이나 됐다.

한반도 태풍 강도 41년간 31% 증가

일본 히마와리 위성이 포착한 제12호, 제13호 제 14호 태풍의 모습. RAMMB/CIRA/CSU

일본 히마와리 위성이 포착한 제12호, 제13호 제 14호 태풍의 모습. RAMMB/CIRA/CSU

한국 기상청이 힌남노를 두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태풍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일본 기상청이 난마돌에 대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위험한 태풍”, “책에서밖에 읽은 적이 없는 기록적인 태풍”이라고 표현하게 된 배경이다. 이들 태풍이 한반도를 직접 강타했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낼 수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발생 지점과 이동 경로 [기상청]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발생 지점과 이동 경로 [기상청]

문 교수는 “한반도에 접근하는 태풍의 연간 최대 강도는 41년간(1980~2020년) 평균적으로 약 31% 증가했다”며 “태풍의 최대 강도를 기록하는 위치가 동아시아 쪽으로 더 접근하고 있고, 이로 인해 한국·중국·일본에 상륙하는 태풍의 강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을 태풍이라고 불리는 9~10월 태풍만 따로 분석해보면, 동아시아로 접근하는 태풍의 수가 41년 동안 2.6개나 증가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쪽으로 확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반도에 접근하는 태풍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제주대 문일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41년 동안 태풍 강도(최대풍속)가 31%, 21.3 노트(시속 39.4km)가 증가했다. 한반도 접근 태풍은 한반도 육지로부터 250㎞ 반경 내에 접근한 태풍을 말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반도에 접근하는 태풍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제주대 문일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41년 동안 태풍 강도(최대풍속)가 31%, 21.3 노트(시속 39.4km)가 증가했다. 한반도 접근 태풍은 한반도 육지로부터 250㎞ 반경 내에 접근한 태풍을 말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 교수는 “한반도 근처로 접근하는 가을 태풍의 증가 경향은 우리나라 태풍 재해의 발생 빈도 및 강도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해수면 온도의 상승을 고려할 경우 한반도에서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강한 태풍의 내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리 냉천이 불어나면서 바로 옆 식당 건물 바닥과 마당이 유실돼 있다. 연합뉴스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리 냉천이 불어나면서 바로 옆 식당 건물 바닥과 마당이 유실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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