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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정권 심판한 美 중간선거…결과 뭐든 美 우선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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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1차 대전이 절정이던 1918년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동포 여러분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한 상황이었다. 그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뤄지는 선거”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민심은 야당에 몰표를 줬고 공화당이 상ㆍ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세계평화를 바라며 구상한 베르사유 조약도 정작 미국 의회서 비준을 받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를 찾아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를 찾아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른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2차대전 중에 열린 1942년 중간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패했고, 이라크전이 한창이던 2006년 중간선거에서도 미국 유권자들은 조지 W 부시 정권에 패배를 안겼다. 그만큼 중간선거에선 견제와 균형의 심리가 컸던 탓이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대법관 숫자를 무리해서 늘리려 하거나(1938년), 의료개혁을 밀어붙였을 때(1994년)도 표심은 일제히 반대편을 향했다.

하지만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11월 중간선거는 예전과 다른 양상이다. 연초만 해도 많은 이가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되는 ‘붉은 물결(Red Wave)’을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중간선거에서 지켜봐야 할 세 포인트를 짚어봤다.

①여성 투표율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은 지난 49년간 낙태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그간 중간선거에선 ‘대통령이 너무 나갔다(gone to far)’는 민심이 작용했는데, 이번엔 오히려 ‘대법원이 너무 나갔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에 영향을 받은 여성 투표율이 중요 변수가 됐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존재감도 이전 선거와 다른 점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구글 검색 빈도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훨씬 앞서고 있다. 결국 이번 중간선거가 바이든 정권보다 연방대법원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②펜실베이니아

대통령 집권 2년 차에 열리는 중간선거에선 하원 의석 전체(435석)와 상원 100석 중 3분의 1인 34석을 새로 뽑는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6석, 상원에서 1석만 더 확보하면 양원에서 다수당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하원은 사실상 지키기 힘들 거란 전망이 우세해, 상원에서 기존 50석만 지켜도 선방했단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상원 2석을 더 확보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일단 52석을 만들면 민주당 내에서 번번이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조 맨신, 커스턴 시네마 의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입법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에서 빼앗아 올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는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등이 꼽힌다. 두 곳 모두 노동자 표가 결정적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주요 도시를 잇달아 찾아가고, 한국 기업인이 미국의 안전한 환경과 우수한 노동자를 칭찬했다는 정체불명의 주장을 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③미국 우선주의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자신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내세웠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기로 하면서 한국산 전기차 차별 우려를 불렀지만 말이다. 약값 인하, 친환경 에너지 투자 등 대선 공약이 담긴 법인 만큼 선거 후에라도 선뜻 고치려 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한편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이 법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아 보인다. 법인세 인상, 기후변화 대응 같은 부분은 반대하더라도, ‘북미산 특혜 규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중간선거가 어떤 결과여도 미국 내 기조는 변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다음 대선을 앞두고 오히려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법안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름값 동향이 주요 변수될 듯”

미국의 선거분석 사이트 ‘사바토의 크리스탈볼’ 편집장인 카일 콘딕에게 이번 선거 전망을 직접 들어봤다. 버지니아주립대 산하에 있는 이 사이트는 2020년 대선에서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의 결과를 예측했다.

공화당의 ‘붉은 물결’은 정말 꺾였나. 지금 판세는.
“여전히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는 트랙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근소한 차이로 다수당이 되겠지만 말이다. (435석 중 230석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상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번 중간선거는 예년과 정말 다른가.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은 밀리는 게 일반적이고, 특히 바이든처럼 대통령이 인기가 없을 때 더 큰 패배를 겪었다. 보통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큰 정책을 견제하며 반대표가 나오는데, 올해는 오히려 대법원에서 큰 결정이 나왔다. 민주당에 힘을 줬다.”  
남은 기간 변수는 뭘까.
“기름값이다. 선거에서 결국 중요한 요소는 경제고, 종종 기름값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이 안정됐지만,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