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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청와대 단 하루도 안 간다” 결심한 다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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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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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시대’는 지난 5월 10일 0시를 기점으로 1948년 이후 74년 만에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했지만,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청와대 영빈관 신축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용산시대 국격에 맞는 영빈관을 지으려다 신축 예산 878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윤석열 대통령이 곧바로 취소했다. 서울의 주민센터(동사무소) 하나 짓는데도 1000억원이 들어가는 고물가 시대에 영빈관 짓는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는 것은 소모적이다.

청와대 본관에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부터 역대 모든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장세정 기자

청와대 본관에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부터 역대 모든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장세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식날 청와대를 국민에게 전격적으로 개방했다. 장세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식날 청와대를 국민에게 전격적으로 개방했다. 장세정 기자

야당 일각에서는 윤 정부 5년이 지나면 다음 대통령은 다시 청와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백성에게 준 것을 도로 빼앗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에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청와대 시대에 마침표를 찍게 된 과정을 돌아보면 아직도 말끔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 두 가지가 남아 있다. 첫째, 권력자가 포기하기 쉽지 않은 청와대를 윤 대통령은 왜 끝내 들어가지 않았느냐다. 둘째, ‘광화문 시대’를 외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자 돌연 태도를 바꿔 국가안보 공백을 내세우며 청와대 잔류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미 “정보 샌다”며 정보공유 중단
“청와대 동향, 북한으로 유출” 의심
“청와대 시대 마침표 결단에 영향”

지난 3월 20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 20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사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 “집권하면 청와대를 해체하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발표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가 많았다. 하지만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 3월 21일 청와대에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공식적인 이유는 구중궁궐(九重宮闕) 불통의 상징인 청와대 시대를 끝내고 청와대 공간 25만㎡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취지였다.

그 와중에 김건희 여사가 역술인의 말을 듣고 따랐다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지금도 청와대 터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지석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청와대가 흉한 땅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해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8년 2월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8년 2월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갑자기 청와대의 가치를 부각한 배경도 여전히 의문이다. ‘삶은 소대가리’ 등 입에 담기도 험한 욕을 퍼부어도 임기 내내 북한에 끌려다니던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국가안보를 역설한 것은 ‘허무 개그’에 가깝다는 비아냥도 있다. 2012년과 2017년 두 번이나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후임 대통령이 과단성 있게 청와대 시대를 끝내려고 하니 속이 상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노골적인 예산 발목잡기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여전히 설명력에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궁금증을 온전히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청와대를 둘러싼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감정 대립과 갈등, 그리고 윤 대통령의 용산행을 설명해 줄 제3의 단서가 될 만한 새로운 주장을 접했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 산책로 쪽에서 내려다본 서울 광화문 쪽 모습. 장세정 기자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 산책로 쪽에서 내려다본 서울 광화문 쪽 모습. 장세정 기자

청와대는 왕조시대 구중궁궐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본관 2층 창문 밖 모습. 장세정 기자

청와대는 왕조시대 구중궁궐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본관 2층 창문 밖 모습. 장세정 기자

“윤 대통령은 친북 주사파 운동권 출신 86세력이 주도한 문 정권을 대선 운동 과정에서 극도로 불신했다. 특히 청와대 내부 동향이 북측으로 계속 빠져나갈 정도로 보안이 취약해졌다는 보고를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에 듣고 청와대 이전에 확신을 굳혔던 것으로 안다.”

문 정부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정보 소식통은 “청와대에서 전날 논의한 내밀한 대화가 바로 다음 날 북측에서 거론되는 정황을 대북 정보망이 포착한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대체로 대북 정보는 인간정보(HUMINT)·신호정보(SIGINT)·기술정보(TECHINT) 등을 통해 입수한다. 앞서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가 공유한 기밀정보가 북한으로 곧바로 유출되는 정황을 포착한 미국 측이 한국 측에 추가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면 차후에 반드시 진상을 가려내야 할 것이다.

청와대 본관 뒤쪽 숲속에 '은거'해 있는 대통령 관저. 산책길 쪽에서 내려다 본 모습. 장세정 기자

청와대 본관 뒤쪽 숲속에 '은거'해 있는 대통령 관저. 산책길 쪽에서 내려다 본 모습. 장세정 기자

또 다른 정보·보안 전문가는 “정보 유출은 내부자가 흘리는 경우, 통신 장비 등을 통해 엿듣는 경우, 건물 시설에 은닉하는 경우 등이 있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정보 유출이 잦았다고 판단해 5월 10일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하면서 경호실이 기존 청와대 장비를 모두 그대로 두고 왔다”고 전했다. 사실 여부는 차차 조사하고 밝혀야겠지만, 북측과 내통한다고 의심받은 문 정부 청와대를 체르노빌 핵 유출 사고 현장처럼 ‘오염된 공간’으로 규정한 윤 대통령 측의 불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이 ‘청와대 엑소더스’를 강행한 배경에는 복합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그에 따른 비난도 찬사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청와대 탈출' 결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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