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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인간과 깨달음 화두 ‘만다라’의 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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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14년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고 김성동 작가. 그는 당시 “(내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게 글판”이라며 “성패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죽을 때까지 할 것이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4년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고 김성동 작가. 그는 당시 “(내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게 글판”이라며 “성패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죽을 때까지 할 것이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 원작 소설을 쓴 소설가 김성동씨가 25일 오전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암 투병 중이었다.

“제 삶을 ‘3판’으로 요약하곤 한다. 첫째 돌판, 고교 중퇴 학력에 ‘붉은(좌익) 집안’ 딱지가 붙었던 시절, 프로바둑기사가 되려 했다. 둘째 중판, 숱한 방황과 진리에 대한 갈증 끝에 중이 되려 했으나 (그의 작품) ‘목탁조’가 불교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조계종 최초의 무승적 제적자가 됐다. 셋째, 마지막 남은 글판이다. 성패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죽을 때까지 할 것이다. 읽고 쓰고, 또 읽고 쓸 것이다.”

2014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본인의 삶을 세 단계로 요약하며 마지막을 ‘글판’이라 했던 고인은 작가로 이름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교 중퇴 후 66년 승려가 되기 위해 수행을 시작했다. 승가에서의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목탁조’로 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공모에 당선됐으나, 내용이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조계종에서 내쫓겼다.

76년 환속한 뒤에도 불교를 다룬 자전적 소설을 다수 집필했다. 78년 중편 ‘만다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만다라’는 불교의 원리를 표현한 불화의 일종으로, 소설은 한 파계승을 지켜보는 승려의 깨달음을 다룬 내용으로, 임권택 감독이 81년 영화로 제작했다. 안성기가 깨달음을 얻는 승려 법운 역을, 전무송이 파계승 지산 역을 맡았다.

해방 직후 태어나, 좌익 경력으로 처형된 부친을 둔 탓에 연좌제로 묶이는 등 고초를 겪었던 고인은 해방 이후 사회의 이념적 갈등, 학생운동 등 사회적 현상을 꾸준히 소설에 담았다. 83년 이념적 갈등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풍적’을 문예중앙에 연재하다 2회 만에 중단당했고, 반미 정서와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그들의 벌판’도 중앙일보에 연재하다 두 달 만에 펜을 내려놓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만다라’를 비롯해 ‘피안의 새’(1981), ‘하산’(1981), ‘침묵의 산’(1982), ‘붉은 단추’(1987) 등이 있다. 장편소설로는 ‘집’(1989), ‘길’(1994), ‘국수’(1995), ‘꿈’(2001) 등이 있고 98년 ‘시와 함께’에 ‘중생’ 외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만다라’ 이후 고인의 또 다른 대표작인 ‘국수’(國手)는 91년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27년 만인 2018년 5권으로 완성해 펴낸 대하소설이다.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시기를 지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인과 인간 군상을 그린 시대극이다.

‘국수’는 바둑 고수를 일컫는 말로, 한때 프로바둑기사를 꿈꾸기도 했던 고인의 별명 ‘문단의 국수(國手)’와도 겹친다.

근현대사와 함께 고인이 가장 많이 다룬 주제인 불교적 구도를 담은 소설 ‘꿈’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99년부터 2000년까지 불교신문에 연재한 소설로, 젊은 승려 능현과 여대생 희남의 사랑과 구도를 다뤘다.

고인은 78년 ‘만다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83년 소설문학 작품상, 85년 신동엽 창작기금상, 2002년 제7회 현대불교 문학상, 2016년 제1회 이태준 문학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건국대 충주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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