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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에 “비핵화, 문 대통령 과도한 관심 불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한·미 연합훈련이)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한·미 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8년 3월 6일 평양에서 돌아온 대북특사단이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했다고 공개했던 전언이다. 이 발언은 김 위원장의 전향적인 대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밝힌 공식 입장은 전혀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현직 주미 특파원 모임인 한미클럽은 25일 이달 발행한 외교·안보 전문계간지 ‘한미 저널’ 10호를 통해 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교환한 27통의 친서 전문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보낸 2019년 8월 5일자 친서에서 한·미 연합훈련 반대 의사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해당 친서를 보낸 시점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깜짝 회동’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시기로 한·미 국방부가 연합훈련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 직후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며 “실무급 양자 협상을 앞두고 도발적인 연합 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군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족이나 7만㎞ 떨어져 있는 이란 육군과 싸우고자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 “개념적으로나 가설적으로 전쟁 준비 연습의 주요 타깃은 우리의 군대다. 연합군사훈련은 도대체 누구에 대한 것이냐”고 물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김정은이 판문점 회담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라며 “이는 한·미동맹 약화와 직결되는 문제로서 북한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친서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 관여하지 않길 바라는 의중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9월 19일 문 전 대통령과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뒤 보낸 2018년 9월 21일자 친서에서 “향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한다”며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과 톱다운(Top-Down) 방식의 협상을 이어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노이 노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인 2019년 3월 22일자 친서에서 “우리의 만남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위원장님과 저는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며 김 위원장을 달랬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북 압박을 기조로 한 실무자들의 태도와는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관심이 많았다”면서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기를 기다리며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워싱턴의 평가가 전혀 우스꽝스러운 것만도 아님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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