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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점령지 4곳, 투표 후 30일 편입 가능성…"사실상 공개투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가 본토와 합병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점령지 4개 지역이 빠르면 오는 30일 러시아 영토에 편입될 전망이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지난 23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주의 러시아 영토 합병에 관한 주민투표가 오는 27일 끝난다. 이후 28일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에 관련 법안이 제출될 예정이며, 다음날 법안이 채택되면 승인이 이뤄진다.

러 점령지 4곳, 이르면 30일 편입 승인 

러시아 여권을 든 한 노인이 24일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에서 합병 주민투표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여권을 든 한 노인이 24일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에서 합병 주민투표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 러시아 하원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 편입을 승인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해 상·하원 의원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서 "의원 모두에게 30일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26일부터 사흘 동안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세 차례 통과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투표는 강압적으로 이뤄졌다. 워싱턴포스트(WP)와 BBC에 따르면 주민투표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투표함 안에 투표용지를 접지 않고 집어넣는 등 사실상 공개 투표로 진행 중이다. 또 무장 군인들에 의해 강제되고 있어 주민 다수가 찬성했다는 투표 결과가 발표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러 "편입 영토 공격하면 핵 사용" 시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4일 유엔총회 연설 이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합병한 지역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근거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향후 러시아 헌법에 추가로 명시될 영토를 포함한 러시아 전 영토는 국가의 ‘완전한 보호(full protection)’ 아래에 있다"며 "러시아의 모든 법규와 원칙, 전략 등이 전부 적용된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러시아 군사교리를 강조했다. 군사교리에 따르면 "적의 군사 공격에 따른 국가 존립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핵무기 사용을 허용한다고 나와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해 "굴복하지 않는다"며 합병 주민투표가 일어나는 와중에도 4개 지역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 공격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는 이날 BBC와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밀려나는 등 좌절을 겪으면서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건 엄포가 아니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푸틴’ 인사도 무분별 동원 비판

러시아 남성이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군 동원령 반대 시위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잡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남성이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군 동원령 반대 시위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잡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30만여명을 동원하기로 하는 등 확전 긴장감이 고조되자 러시아 내부에서도 반발 시위가 격해지고 있다. 독립적인 시위 감시단체인 OVD-인포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나흘 동안 러시아 전역에서 군 동원령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일어났으며, 40여개가 넘는 도시에서 2000여명 넘게 체포됐다.

또 군 동원 대상자 비율이 대도시보다 주로 지방·소도시에서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푸틴 대통령을 옹호하던 지역 사회 지도자들도 항의에 나섰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시베리아에 있는 사하자치공화국의 사르다나 아브크센티에바 하원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마을 주민이 300명인데 남성 47명이 소집됐다. 이런 숫자가 나온 근거가 무엇인가"라며 비판했다. 사하족을 비롯한 일부 소수민족 단체는 푸틴 대통령에 징병 중단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했던 ‘친푸틴’ 인사들도 무분별한 징병을 비판했다.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투데이(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니안은 "민간인은 35세까지 모집될 수 있는데 소집서류는 40대에도 가고 있다"며 "(정부는) 악의에 찬 것처럼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명한 친러 군사 블로그 라이바는 "건강 문제가 있거나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징병 통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엄청 많다"고 했다.

러 탈출 행렬…"출국 금지할 수도"

24일 핀란드 남부 발리마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길게 서 있는 러시아에서 온 차량들. EAP=연합뉴스

24일 핀란드 남부 발리마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길게 서 있는 러시아에서 온 차량들. EAP=연합뉴스

징집을 피해 육로로 이어지는 조지아·핀란드·몽골·카자흐스탄 등을 통해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접경 지역은 붐볐다. 러시아 독립언론 모스크바타임스는 "조지아 국경 앞 한 검문소 앞에 2300여대 차량이 서 있다"고 이날 전했다.

핀란드 국경수비대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 동안 입국한 러시아인 수가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핀란드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이어지자 페카 하비스토 핀란드 외교장관은 23일 "앞으로 며칠 안에 관광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러시아인의 입국을 크게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4개국(폴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은 러시아 관광객 입국을 대부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내부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자국 병력이 자발적으로 항복하거나 전투를 거부하면 최대 10년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는 소식통을 인용해 "곧 계엄령을 도입하고 남성의 출국을 금지하는 조치가 발표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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