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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약 급증, ‘차이나 화이트’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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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랜드’라 불리는 거리가 있다. 대낮인데도 길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이 넘쳐나고, 허리를 접은 채 비틀거리며 걷거나, 제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거나, 혼자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리고들 있다. 최근 소개돼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긴 이 동영상 속 거리는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애비뉴다. 미국 동부 최대의 마약 거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런 모습이 더 이상 남 일이 아니게 됐다는 뉴스가 최근 보도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류가 1295㎏으로 전 해(321㎏)의 4배 이상 급증했다는 내용이었다. 4년 전인 2017년(154㎏)과 비교하면 8배 늘어난 수치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닌 나라가 됐다. 드라마 〈수리남〉 방영으로 마약 범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런 일들의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슨 말일까. 일단 한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의 상당수가 중국 폭력조직인 삼합회(三合會)와 연계돼 있다. 또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으로 들어온 코카인의 양은 2020년 대비 30배 폭증했다. 같은 기간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밀수도 10배 늘었다.

코카인은 마약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인들이 애용하던 마약이었다. 평균 단가가 가장 비싼 ‘고급’ 마약이기도 하다. 코카인의 한국 내 소비가 급증했다는 것은 단순히 이것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어렵다. 마약 유통과 복용이 불법이라는 점과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다는 점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측면이 훨씬 크다.

어째서 단기간에 대량의 코카인이 한국으로 밀려들게 된 것일까.

그 실마리를 펜타닐에서 찾을 수 있다. 펜타닐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대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말기 암 환자처럼 극심한 고통에 직면한 이들에게만 처방된다. 진통 효과는 모르핀의 200배, 헤로인의 50~100배이고 치사량은 2㎎으로 청산가리 치사량의 1%로도 죽음에 이른다.

펜타닐 이미지

펜타닐 이미지

1960년대 마리화나와 LSD, 1980년대 이후론 코카인이 미국 사회를 휩쓸었다면 2010년대 중반부턴 펜타닐이 그 자리를 대체해 나갔다. ‘펜타닐 위기(Fentanyl crisis)’란 용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펜타닐이 대유행한 이유는 기성 마약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효력에, 초저가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가성비 갑’ 물질인 것이다. 펜타닐 사업에 3000달러(약 420만원)를 투자하면 150만 달러(약 21억원)를 번다고 한다.

이 펜타닐의 최대 생산국이 중국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 원료 의약품의 40%를 생산한다. 5000개 이상의 제약 기업과 16만 곳 이상의 화학물질 제조·유통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펜타닐은 의료용 진통제로 생산되기 때문에 규정대로 관리만 한다면 생산과 수출 자체는 합법이다.

하지만 여러 ‘어둠의 경로’로 펜타닐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삼합회 등 중국 마약상들은 펜타닐과, 그보다 10배 강력한 서펜타닐, 100배 강력한 카펜타닐 등을 생산해 알리 익스프레스나 알리바바 닷컴 같은 쇼핑몰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팔아댔다. 결제는 비트코인을 활용했다. 미국에서 펜타닐은 ‘차이나 화이트(China white)’란 별명으로 통했다.

마약 카르텔 이미지

마약 카르텔 이미지

급기야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2018년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펜타닐 생산 규제를 요구했다. 중국 측은 ‘미국의 약물 문제에 중국이 무슨 상관이냐’고 책임 공방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듬해 펜타닐류 약물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중국 당국의 압박이 강화되자 마약상들은 우회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펜타닐 완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대신 원료물질들을 제3국으로 보내 그곳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대상국은 마약 카르텔로 유명한 멕시코와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다. 펜타닐을 구성하는 원료들은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원료물질 전부의 유통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이렇게 완성된 펜타닐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거쳐 지금도 여전히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펜타닐 천국이 되다 보니 코카인과 필로폰 수요가 줄거나 정체되고, 잉여 코카인·필로폰 판매를 위해 마약상들이 한국처럼 경제력 있는 마약 청정지역에서 시장을 넓히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화학약품 생산 인프라와 국제 마약상들의 유통망, 더 싸고 강력한 마약을 원하는 미국인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스리쿠션으로 한국에서 마약 유통·소비가 급증한 셈이다. 마약에 취한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펜타닐까지 들여오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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