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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돔 몰래 팔고 "태풍에 그물 찢어졌다"…보험금 4억 청구 결말 [요지경 보험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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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피해를 입은 양식장 모습. (기사 본문과 사진은 관련 없음) 연합뉴스

태풍 피해를 입은 양식장 모습. (기사 본문과 사진은 관련 없음) 연합뉴스

경남 남해군에서 해상가두리양식장을 운영하는 A씨와 아들 B씨는 2019년 6월 수조에서 키우던 참돔 8만7600마리에 대해 ‘양식 수산물 재해보험’에 가입했다. 재해로 손실이 발생하면 보상받는 상품으로, 보험료 약 5300만원을 내면 최대 8억7000만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었다. 보험료 중 약 3000만원은 국고보조금을 받았고, 자기부담금은 약 2300만원 정도였다.

그해 9월 태풍 ‘링링’이 북상해 남해안 부근을 지나간 뒤 이들은 보험사에 태풍 피해를 입었다며 보험금을 청구했다. 태풍에 떠밀려온 목재 등에 일부 수조의 그물이 찢어져 키우던 참돔이 유실돼 4억2705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며 보험금 청구서를 보험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태풍 '링링'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인근의 다른 어장의 피해 신고가 없었는데 이들만 그물이 찢어졌다고 하는 주장이 의심스러웠던 보험사는 현장 조사에 나섰다. 보험사가 확인해보니 태풍이 불어온 방향과 상관없이 그물이 무작위로 찢겨 있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양식장의 그물이 찢어져 물고기가 유실되면 이들을 잡기 위해 낚싯배나 낚시꾼이 몰려드는데 어장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한 결과 그런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A씨가 태풍으로 그물이 찢어져 수산물이 유실됐다는 이유로 매년 보험금을 청구한 점도 의심스러웠다. 이를 근거로 보험사는 이들이 고의로 그물을 훼손했는지 조사해달라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태풍도 이미 지나간 데다 당시 수중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 없는 탓에 경찰도 그물이 찢어진 이유를 밝히기 어려웠다. 그러다 어장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을 포착했다.

한 직원이 경찰 조사에서 “지난 6월 한 수산물유통업체에 키우던 참돔 6340kg(약 8000마리)을 판매했는데 A씨가 장부에 참돔이 아닌 우럭을 판 것처럼 허위로 입력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시가로 6000만원 정도 된다. 보험 대상물인 참돔을 판매하려면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A씨가 서류를 위조해 이를 감춘 것이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종합해 이들이 보험사를 속여 참돔을 빼돌린 뒤 그물을 훼손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들을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이들이 그물을 고의로 훼손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려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찢어진 방향이 일정하지 않거나, 낚시꾼이 모이지 않았다는 점, 다른 어장은 피해가 없는데 유독 피고인의 어장만 매년 피해가 발생했다는 등의 사실은 의심 가는 정황이지만 유죄를 확신할만한 증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무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이 보험사 몰래 참돔을 판매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점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아들 B씨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어장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수산업법 위반 혐의도 추가로 인정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의 보험사기는 미수에 그쳤지만 청구한 보험금이 4억원이 넘는 거액”이라며 “이런 보험사기 때문에 선량한 다수 보험계약자의 보험료가 오르는 등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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