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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선 '냥심'…고양이 양육권 소송, 길냥이 놓고 항소심까지 [가족의 자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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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98조는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합니다. TV에서도 ‘우리집 막내 동생 ○○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고, 얼마전 SNS에서는 ‘불이 났는데 남의 집 아기 VS 우리집 반려동물’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반려동물은 우리의 ‘가족’인데, 아직 법적 지위만 갖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지난해 법무부가 민법 제98조 2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신설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은 바뀌지 않았지만, 최근 반려동물을 둘러싸고 늘어난 법적 분쟁은 변화된 사회상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캣맘’에게로? ‘임보자’에게로?…法 ‘임보자’ 손들었다

한동안 고양이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화제였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양이에 진심이었던 ‘캣맘’과 ‘임보자’(임시보호자)의 다툼이 법정까지 간 것입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방식이 달랐을 뿐인데, 깊게 팬 감정의 골은 소송전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고양이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낸 김모씨는 집 근처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하는 ‘캣맘’이었습니다. 김씨는 지난 2019년 대전에서 한쪽 다리가 아픈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거나 텐트 집을 설치하는 등 고양이를 돌보는 데에 마음을 쏟았죠.

그런데 한쪽 다리를 절뚝대는 가여운 고양이가 횡격막 탈장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심지어 새끼까지 가졌습니다. 김씨는 고양이 카페에 출산 전후로 3개월 정도 임시로 맡아줄 사람(임보자)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소송 대상인 새끼고양이 [판결문 캡처]

소송 대상인 새끼고양이 [판결문 캡처]

이 글을 본 유모씨가 어미 고양이를 맡게 됐습니다. 한쪽 다리가 안 좋은 데다 탈장까지 있었던 고양이는 2마리의 새끼를 낳다 건강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빚어집니다. ‘임보자’인 유씨는 어미 고양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탈장 수술부터 받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고, ‘캣맘’인 김씨는 출산 중 수술이 무리라고 판단하면서 의견이 엇갈린 것입니다.

워낙 건강이 안 좋았던 어미 고양이는 수술 후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둘은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습니다. 김씨는 엄마 고양이의 300만원 이상의 치료비와 장례비까지 지불하면서 유씨에게 새끼 고양이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임보자인 유씨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유씨 입장에서는 김씨가 출산이 임박한 어미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고 탈장 수술을 늦게 받게 해서 어미 고양이를 죽게 만들었을 뿐더러 새끼 고양이들과 병원을 가겠다는 약속조차 일방적으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죠다.

결국 불기소 처분이 나긴했지만 김씨는 유씨가 자신이 엄마 고양이 치료비를 내게 만들었다며 사기와 공갈 협박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미 고양이가 낳고 간 아기 고양이들을 둘러싼 민사 소송으로도 번졌습니다. 캣맘 김씨 측은 자신이 어미 고양이를 소유하고 있었고, 임보자인 유씨는 어미 고양이를 잠깐 맡은 것이므로 당연히 새끼 고양이에 대한 소유권이 있고 ‘돌려달라’고 할 권리(반환청구권)도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유씨 측은 ‘임시 보호’가 아닌 ‘소유’의 뜻으로 구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씨가 어미 고양이의 치료비를 지불하긴 했으나 난산 위험이 있는 고양이를 구조해 병원으로 데려가고, 새끼 고양이를 돌본 것이 본인이라고 주장입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1심은 캣맘의, 2심은 임보자의 손을 들었는데요. 대전지법 민사항소5-3부(부장판사 윤이진)는 지난달 9일 캣맘 김씨가 고양이 양육자 유씨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 동산 인도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고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습니다.

항소심에서는 임보자가 캣맘을 향해 “돌려달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맡아서 키워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해야 된다는 내용으로 항의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임보자가 캣맘이 소유권자임을 전제하면서 한 표현에 대하여 정정을 요구하면서 불쾌감을 표현한 점 등에 비춰 이미 임보자가 돌보기 시작할 때부터 캣맘의 소유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임시보호이므로 반환을 약정했다는 주장 역시 “구체적 약정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설사 약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캣맘 측이 병원에 데려가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신뢰관계 파탄으로 해지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1‧2심 모두 캣맘인 김씨가 2019년 11월부터 김씨가 고양이를 소유해 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캣맘이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거나 진료비를 내긴 했지만, 캣맘 혼자 쓰는 장소가 아닌 ‘택시회사 마당’에서 고양이가 살아왔다는 점이나 직접 보호하거나 임시보호처를 구해서 보호하지 않았다는 점 등 때문에 어미 고양이에 대한 타인의 간섭을 배제할 정도의 사실적 지배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고양이는 아내가 키우고, 남편에겐 ‘면접권’을...”

국내 반려동물 관련 통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KB '2021 한국 반려동물보고서’]

국내 반려동물 관련 통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KB '2021 한국 반려동물보고서’]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부부가 이혼할 때도 반려동물의 ‘양육권’이 언급됩니다. 법적으론 물건의 지위라 재산 분할의 대상이긴 하지만 마치 자식 양육권을 다루듯 반려동물도 ‘양육권 조정’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진 겁니다.

실제로 이혼 소송 중 ‘고양이는 아내가 키우되, 남편이 고양이 양육비의 절반을 부담하고 대신 정기적으로 고양이를 면접 교섭할 수 있다’는 취지로 조정에 합의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 측 대리를 맡은 정문이 이혼 전문 변호사는 “최근 반려동물이 아프면 병원비를 분담하자거나 사진을 전송해주는 식의 자세한 합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프랑스 민법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있습니다. 오승규 교수(중원대 법학)는 논문에서 “프랑스에서는 이혼할 때 반려견의 관리권을 아내에게 주고 남편에 대한 반려견 양육비 청구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나 헤어진 배우자에게 귀속된 반려견에 대한 방문·숙박권을 부정한 판례도 있다”고 소개했죠.

미국의 코네티컷주에서는 ‘피해자’인 동물을 위한 특별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다수 주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반려동물도 ‘접근 금지 명령’의 대상에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1년 반려동물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1448만 명으로 604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 집 건너 한 가구가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셈입니다. 과연 반려동물은 ‘물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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