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위기 순간마다 등장하는 인사가 있다. 19일 국민의힘 원내 수장으로 선출된 주호영 원내대표다. 스스로 주변에 “직무대행만 여섯번 했다”고 말할 정도로 당의 격변기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다.
주 원내대표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시절인 2015년 1월 국무총리로 지명된 이완구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직무대행을 맡았고, 그해 7월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사퇴했을 때도 또다시 직무대행으로 등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로 바른정당에 합류했을 때도 주 원내대표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주 원내대표는 2017년 3월 정병국 대표 사퇴 이후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고, 같은 해 9월 이혜훈 대표가 금품수수 의혹 논란(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로 종결)으로 사퇴하자 또 권한대행을 맡았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시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0년 4월 총선 패배로 황교안 대표 등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원내대표로 선출됐고,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호흡을 맞추다가 2021년 재·보궐선거 승리 뒤 김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또다시 대행을 맡았다.
주 원내대표는 이준석 전 대표 징계사태에서는 의원총회 추인을 받아 비대위원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이 이 전 대표가 신청한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해 직무 정지되는 부침을 겪었다. 이후 정진석 비대위가 새로 출범하고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과정에서 주 원내대표는 고심 끝에 원내대표 도전장을 내밀었고, 19일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당은 가처분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 전 대표가 정진석 비대위 등을 상대로 추가 신청한 가처분 심문이 28일 열린다. 정 위원장은 21일 “가처분 기각을 기대하지만, 지난 법원의 판단을 보면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며 “3차 비대위는 어렵기 때문에, (또 비대위가 해체되면) 주호영 원톱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주 위원장이 정치 인생에서 7번째 대행을 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단 얘기다.
주 원내대표가 위기 국면에서 구원 투수로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 관계자는 “계파색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합리적이라는 정치권 평가가 많다”며 “특히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혼란한 당 상황과 야당과의 관계 등을 원만하게 풀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 원내대표는 2020년 원내대표였을 당시 180석 거대 여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민주당의 6개 상임위원장 단독 구성에 항의해 전국 사찰을 돌며 칩거하기도 했다. 당시 주 원내대표가 일주일간 이동한 거리만 1500㎞가 넘었다. 주 원내대표는 그 이후 카카오톡 프로필 소개 문구를 불교 용어인 ‘인욕(忍辱: 마음을 가라앉혀 욕된 것을 참음), 하심(下心: 자기를 낮추는 마음), 청정(淸淨: 허물과 번뇌에서 벗어남)’으로 설정해놨다.
당내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과거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많다. 2020~2021년 주 원내대표가 당을 이끌 때는 ‘독주’라는 지적을 받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공세를 펴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윤 정부 지지율 하락세와 내홍이 겹쳐 당이 수세에 몰렸기 때문이다.
특히 19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주 의원이 61표를 얻었는데, 경쟁자인 이용호 의원이 42표를 얻어 선전하는 일도 있었다. 그가 직무정지 직후 곧바로 원내대표로 복귀한 것을 두고, 당 안팎에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은 것도 과제다. 여권 관계자는 “당뿐만 아니라 윤 정부의 명운이 걸린 위기 순간에 주 원내대표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