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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는 코베어갔지만, 왜군 묻어준 조선…'왜덕산 참회' 하토야마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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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해 11월 8일 오후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쓰야마(津山)시의 이총(耳塚, 귀 무덤) 앞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임진왜란(1592∼1598) 때 희생된 조선인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제에 참석해 사죄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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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베어 간 조선군과 백성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훗날 귀와 함께 코까지 대거 묻은 사례가 드러나 이비총(耳鼻塚, 귀·코 무덤)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임진왜란 당시 숨진 조선인 넋을 기리며 일본 측의 무한 책임을 강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행한 잔혹한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8일 오후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쓰야마(津山)시의 귀 무덤 앞에서 부인과 함께 합장하고 있다. 귀 무덤은 임진왜란 때 왜장이나 왜군들이 전쟁 공로를 증명하기 위해 베어서 가져간 조선군과 조선 민중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연합뉴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8일 오후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쓰야마(津山)시의 귀 무덤 앞에서 부인과 함께 합장하고 있다. 귀 무덤은 임진왜란 때 왜장이나 왜군들이 전쟁 공로를 증명하기 위해 베어서 가져간 조선군과 조선 민중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연합뉴스

“도요토미의 잔혹한 일…잊어선 안된다” 

430년 전 발생한 임진왜란과 한·일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일본 내 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가 과거사에 대한 사죄의 뜻을 잇따라 표명해서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한파로 알려진 하토야마 전 총리다. 그는 임진왜란과 징용 문제 등 과거 일본의 잘못을 사과하고 한·일 간 평화를 촉구해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4일 명량해전 무대였던 전남 진도를 찾는다. 이날 오전 10시 진도 왜덕산(倭德山)에서 열리는 위령제에서 추모사를 한다. 그가 지난해 11월 일본 오카야마 이총에서 사죄의 뜻을 밝힌 데 이어 이날 어떤 말을 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왜덕산은 조선 백성이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 시신을 묻어준 곳이다.

그는 이날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명제국(명나라) 정복을 목표로 원정군을 조선으로 향하게 했다”며 “전쟁 때 돌아가신 많은 영혼에 진혼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원점이라고 이해했다”는 취지의 추모사를 할 예정이다.

왜덕산에 대해서는 “명량해전 때 죽은 일본 수군을 진도 주민 여러분이 수습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일본 수군에 덕을 베풀었다' 의미로 ‘왜덕산’이라 이름 붙여진 것도 기쁘다”고 밝힌다.

명량해전 당시 숨진 왜군이 묻힌 전남 진도군 왜덕산 전경. 현재는 간척지가 된 바닷가에 왜군의 시신이 밀려오자 진도 백성들이 한 곳에 매장을 해줬다. 프리랜서 장정필

명량해전 당시 숨진 왜군이 묻힌 전남 진도군 왜덕산 전경. 현재는 간척지가 된 바닷가에 왜군의 시신이 밀려오자 진도 백성들이 한 곳에 매장을 해줬다. 프리랜서 장정필

명량대첩 때 숨진 왜군 무덤 ‘왜덕산’

진도문화원 등에 따르면 조성 당시 무덤 100여기 중 50기 정도가 왜덕산 자락에 남아 있다. 당시 진도 백성들은 조선을 침략한 원수들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다고 한다.

“왜덕산에 왜군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는 200여 년이 흐른 2002년 진도주민 이기수씨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진도 주민은 "임진왜란 당시 진도 해안으로 밀려온 왜군 시신을 보고 ‘시체는 적이 아니다’라며 수습해줬다"며 무덤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명량대첩 당시 숨진 일본 구루시마 수군 후손인 현창회(顯彰會) 회원 등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박주언(77) 진도문화원 원장은 “이기수씨 증언을 토대로 인근 주민을 설득한 끝에 왜군 무덤을 확인했다”며 “왜덕산 말고도 왜군 무덤이 인근에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9월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해전재현’. 올해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를 컴퓨터그래픽스(CG)로 재현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2016년 9월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해전재현’. 올해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를 컴퓨터그래픽스(CG)로 재현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13척 VS 133척 ‘대승’…종전에 결정적 역할

왜덕산 무덤은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배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명량해전 직후 만들어졌다. 당시 괴멸 위기에 몰린 조선 수군은 울돌목(鬱陶項)의 빠르고 험한 물살을 이용해 대승을 거뒀다. 기적 같은 이날 승리는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을 끝내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은 막을 내렸지만 전쟁의 상처는 컸다. 대표적인 게 일본 교토(京都)에 생긴 이비총이다. 왜군이 당시 전리품으로 12만개가 넘는 조선인 귀와 코를 가져가 무덤을 만들었다. 일본에 있는 이비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령에 따라 1597~1598년 일본 곳곳에 만들어졌다. 서애 류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에는 ‘왜군이 조선인만 보면 베어가 코나 귀가 없는 조선 백성들이 많았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이) 임진왜란 승전의 증거로 조선인 귀와 코를 잘라와 묻은 귓총, 비총이 교토와 요코하마 등 각지에 있는 데 이는 만행의 증거”라며 “그 공양을 드리는 것이 과거의 사과와 함께 미래를 향한 한일관계가 개선돼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의 모습.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군과 양민을 학살해 그 증거로 코나 귀를 베어낸 뒤 묻은 곳이다. 중앙포토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의 모습.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군과 양민을 학살해 그 증거로 코나 귀를 베어낸 뒤 묻은 곳이다. 중앙포토

귀무덤, 임진왜란 후 일본 곳곳에 생겨

지난해 11월 위령제가 열린 오카야마현 귀무덤도 일본 내 이비총 중 하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위령제 당시 “상처를 준 쪽은 잊기 쉽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쪽은 그 마음을 오랫동안 갖고 있다”며 “상처받은 사람에게 사죄하는 마음은 영구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일본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그는 일제 징용이나 원폭 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해왔다.

당시 행사를 주도한 일본의 시민단체 ‘교토에서 세계로 평화를 퍼뜨리는 모임’도 한·일간 평화를 기원했다.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출병의 희생이 된 조선반도 사람들의 영혼을 애도하며 공양을 올립니다”라는 내용의 위령비를 세웠다.

허산 진도문화원 부원장이 지난 20일 명량해전 당시 숨진 왜군이 묻힌 전남 진도군 왜덕산 묘지를 가리키고 있다. 현재는 간척지가 된 바닷가에 왜군의 시신이 밀려오자 진도 백성들이 한 곳에 매장을 해줬다. 프리랜서 장정필

허산 진도문화원 부원장이 지난 20일 명량해전 당시 숨진 왜군이 묻힌 전남 진도군 왜덕산 묘지를 가리키고 있다. 현재는 간척지가 된 바닷가에 왜군의 시신이 밀려오자 진도 백성들이 한 곳에 매장을 해줬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도서 양국의 화해·평화 기원

교토평화모임 등은 이번엔 한국을 찾아 한·일 양국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한다. 23일부터 이틀간 왜덕산 일원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를 통해서다. 명량해전 당시 전사한 일본군이 안장된 왜덕산과 이총을 조명함으로써 한·일 간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행사다.

일본 수군의 무덤인 왜덕산에서 직선거리로 4㎞가량 떨어진 곳에는 ‘정유재란 순절묘역’이 있다. 정유재란 당시 숨진 조선 병사들이 묻힌 무덤이다. 현재 묘역에는 232기의 무덤이 있으며 일부 문중의 묘지 16기 외에는 모두 주인이 없다. 진도문화원 측은 이 무덤들이 정유재란 말엽인 1597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2016년 9월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해전재현’. 올해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를 컴퓨터그래픽스(CG)로 재현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2016년 9월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해전재현’. 올해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를 컴퓨터그래픽스(CG)로 재현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425년 전 명량대첩, 30일 CG로 재현

하토야마 전 총리의 진도 방문 엿새 후에는 명량대첩을 기리는 행사도 열린다. 오는 30일부터 사흘간 진도·해남 울돌목 일원에서 열리는 명량대첩축제다. ‘울돌목 페스타, 명량 빛을 품다’를 주제로 최첨단 미디어 해전 재현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기존 명량대첩축제는 명량대첩 해상전투를 어선 수십척을 동원해 바다 위에서 실제로 재현해왔다. 이때 어선 61척에서 쏘아대는 화포와 불꽃 등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는 주무대에 설치한 가로 20m 세로 5m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컴퓨터그래픽스(CG)로 제작한 해상전투 장면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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