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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하락에 무역적자 덮쳐, 비상 금통위라도 열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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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05면

[위기의 금융시장 긴급 점검] 외환시장 4대 이슈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미국발(發) 긴축 공포가 한국을 덮치고 있다. 원화 가치는 달러당 1400원 선 아래로 떨어졌고, 증권시장은 연일 하락세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외건전성 지표 등이 양호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외환·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원화 가치 하락을 막을 재료 찾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외국인 투자금이 이탈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한국경제가 혼돈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외환시장 4대 이슈를 점검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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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전된 한·미 금리, 지속돼도 괜찮나

한·미 간 금리 차는 최대 0.75%포인트로, 7월보다 더 커졌다. 문제는 한·미 금리 역전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예상한 올해 말 금리 수준은 4.25~4.5%이다. 현재(3.00~3.25%)보다 1.25%포인트를 더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올해 FOMC는 2번(11월, 12월) 남았다.

긴박한 상황에 한국은행도 급선회했다. 앞선 8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예고했던 이창용 한은 총재는 22일 “0.25%포인트 인상의 전제 조건이 많이 바뀌었다”며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은이 다음달 12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더라도 한·미 간 금리를 다시 역전하기 힘들다. 한은이 빅스텝을 밟지 않거나, 미국이 점도표 예상을 뛰어넘어 2차례 모두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떼면 한·미 간 금리는 최대 1.7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지금까지 4차례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된 적이 있지만, 금리 차는 최대 1.5%포인트였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다음 달 한은이 빅스텝으로 올리고, 자본 유출 상황에 따라 다음에는 빅스텝 혹은 베이비스텝을 고려해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정책의 긴축 정도를 높여갈 필요가 있어 빅스텝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당장 비상 금통위를 열어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채 후폭풍 등 고통이 따르더라도 외환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대 현안”이라며 “다음 달 금통위를 기다리지 말고 즉각 자이언트스텝이나 빅스텝을 단행해 빠르게 환율 시장 안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 한·미 통화스와프, 안 하나 못 하나

원화값이 크게 휘청거리면서 위기 때마다 ‘안전판’ 역할을 한 한·미 통화스와프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은 “이대로 방치하다 미국 금리가 5%에 육박하면 원화 가치는 1600원마저 뚫리며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신속히 통화스와프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이나 미세조정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은은 현재로서는 통화스와프가 환율을 안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외환·금융위기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는 적어도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원화 가치는 64원 급등하기도 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같은 적극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식 교수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아래로 내려가며 안정세를 찾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는 ‘말’뿐이다. 2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동성 공급 장치’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한·미 정상 간에 협의를 하더라도 그게 바로 통화스와프라는 구체적 형태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통화협력체계 구축’도 가시적인 성과가 아직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가 환율 시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정근 회장은 “정부도 환율 시장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윤 대통령이 NSC(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미국 국가안보회의)에 한·미 통화스와프 문제를 집중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주시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3 현금 비중 낮은 외환보유액, 충분한가

한국은행이 집계한 8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364억3000만 달러다. 올 들어서만 267억 달러가 줄면서, 보유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괜찮다”는 입장이다. 보유액 자체로만 보면 세계 9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 적정성 논란은 원화 가치가 내릴 때마다 떠올랐던 문제인데, 보통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기준에 비춰 적정성 여부를 판단한다. BIS에서는 최근 3개월치 경상거래금액, 유동성외화채권 잔액, 외국인 증권투자금의 3분의 1과 거주자 외화예금 등을 더한 금액을 적정액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7839억 달러로 3400억 달러가량 부족하다. IMF에서는 지난 2013년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환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금액의 100~150% 수준을 적정액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른 한국의 외환보유액 적정치 하단은 4303억7000만 달러 수준으로 불과 61억 달러가 남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IMF에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쌓으라고 한 적도 없고, 하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규모가 작은 신흥국의 경우 적용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라고 말했다.

어느 쪽 기준이 됐든, 전문가들은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정식 교수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하기엔 위험하다”며 “시장 심리가 불안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정근 회장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금 2000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갔다”며 “지금은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세돈 교수는 “외환보유액의 내용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현금 비중은 현재 4%로 낮은 상황”이라며 “외환위기 때도 바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없었던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4 커지는 무역적자, 대책은 있나

한국경제의 든든한 뒷심이었던 무역 성과는 회복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8월까지 5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진 데다, 이달 들어서도 20일까지 누적된 무역적자 규모만 41억 달러에 이른다. 9월 적자가 확정될 경우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직전이던 1997년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 산업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는 업황마저 꺾이고 있다. 상반기 반도체 수출 물량이 줄기 시작하더니, 하반기 들어서는 감소세로 들어섰다. 원화가 약세를 보일 때마다 해외 수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주던 ‘환율 효과’마저 자취를 감췄다. 김정식 교수는 “중국 위안화도 달러당 7위안으로 떨어지면서 가치가 많이 하락한 상태”라며 “한국만 약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힘들고, 이것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21일 보고서를 통해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확률은 흑자일 때와 비교해 28.3% 상승한다고 밝혔다. 무역수지 적자가 국내 금융시장의 기초체력을 떨어뜨려 외국인 투자금 유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전 세계가 자국 산업 살리기에 매달리며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한국 무역수지가 막대한 흑자로 돌아서긴 어렵다는 것이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무역수지 적자가 큰일이긴 하지만 구조적 변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한국경제를 지원할 큰 그림을 그리고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얼마나 오래갈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단기적으로 기업들의 유동성 문제 등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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