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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거짓 해명, 국민 청력 시험” 여 “국익 위해 비판 자제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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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03면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파문

유엔총회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토론토대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전문가들과의 간담회 도중 나노봇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유엔총회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토론토대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전문가들과의 간담회 도중 나노봇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23일 정치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 ××” 발언을 둘러싸고 온종일 시끄러웠다. 전날까지 윤 대통령의 ‘막말’ 논란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날은 “미국 국회가 아닌 한국 국회를 지칭한 것”이란 대통령실 해명이 ‘거짓 해명’이라며 공세의 방향을 틀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 해명을 적극 옹호하며 총력 방어에 나선 가운데 당내 일각에선 “이게 방어가 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 발언은) 국민에겐 망신살일 것이다. 국민은 엄청난 굴욕감과 자존감의 훼손을 느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짓이 거짓을 낳고 실수가 실수를 낳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길을 잘못 들면 되돌아 나오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밤 김은혜 홍보수석이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가 실제 음성이라고 주장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홍근 원내대표도 ‘이 ××’는 한국 국회의원이고 ‘바이든’은 ‘날리면’이라는 김 수석의 발언에 대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며 국민의 청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 기관인 민주당의 169명 국회의원은 정녕 ‘××들’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의회를 향한 발언이었어도 문제고 한국 국회나 야당을 겨냥한 발언이라도 문제라면서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즉각 경질하고 김 수석은 파면해야 한다”며 “최종 책임자는 윤 대통령 본인인 만큼 꼭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도 가세했다. 윤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변명을 하더라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구질구질하다”며 “외국인들이 윤 대통령을 ‘욕쟁이 대통령’이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영상을 접한 국민이라면 대통령실 해명이 터무니없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닉슨 게이트에서도 증명됐듯이 거짓말이 정치인에겐 훨씬 더 치명적”이라고 비판했다. 비속어보다 거짓 해명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란 경고인 셈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행보를 평가절하하며 대통령 사과와 외교·홍보 라인 경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번 설화 논란을 계기로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면서 다음달 국정감사까지 정국의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순방 때마다 지지율이 하락하는 윤 대통령의 ‘순방 리스크’와 외교력 부재를 최대한 부각시키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당장 민주당은 이날 김건희 여사에 공세의 초점을 맞추고 나섰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도 김 여사의 논문 표절과 허위 경력 기재 의혹과 관련해 증인·참고인 11명을 단독으로 채택했다. 국민대 임홍재 총장과 김지용 이사장, 논문 지도교수였던 전승규 교수 등이 모두 포함됐다. 민주당은 다음달 4일과 21일로 예정된 교육위 국감에 이들을 출석시켜 관련 의혹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반면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은 다르다는 대통령실 해명을 앞세우며 “국익을 위해 비판을 위한 비판은 자제하라”고 반박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윤 대통령 워딩은 분명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쪽팔리겠다’였다”고 하자 “동영상을 여러 차례 봤는데 딱히 그렇게 들리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저희로서는 대통령실 해명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국익에 도움이 될지 판단해 보며 숨 고르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의 외교 활동은) 비록 흡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대표로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하는 활동이니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한발 더 나아가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데 대해 “상당한 외교적 쾌거”라고 주장했다.

전임 정부에 대한 비난도 맞불 전략으로 동원됐다. 주 원내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도 ‘혼밥(혼자 식사)’ 논란이 있었다”고 언급한 데 이어 권성동 전 원내대표도 페이스북 글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저자세로 굴종하며 ‘삶은 소대가리’ ‘저능아’ 소리를 들었던 게 진짜 외교 참사”라고 반박했다. 박수영 의원은 “음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에 의뢰해 잡음을 최대한 없애 봤더니 ‘이 ××들’이라고 보도된 발언이 실제로는 ‘이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도 “당파적 이익을 갖고 싸우는 건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인 만큼 외교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내는 게 맞다”고 가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도부와 친윤계 의원들의 총력 방어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선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도 적잖게 흘러나왔다. 비윤계 초선 의원은 “이미 녹화 영상이 다 보도됐는데 ‘욕설이 아니다’ ‘국익이 중요하다’는 말로 방어가 되겠느냐. 국민은 대통령실 해명도 말장난으로 여길 것”이라며 “대통령의 발언 하나로 순방 성과가 다 묻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일각에선 대통령실 해명이 맞다 하더라도 ‘이 ××’들이 한국의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셈이 되는 만큼 또 다른 논란을 부를 공산이 크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서는 주 원내대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만약 그 용어(‘××’)가 우리 국회와 야당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많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대구·경북(TK) 지역구의 한 의원은 “‘이 ××’ 발언이 미국 의회를 겨냥한 게 아니라 우리 국회를 의미한 거라고 해명하는 편이 그나마 낫겠다고 판단해 이렇게 해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래도 최소한의 사과는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논란이 됐을 때 곧바로 사과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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