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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거래·돈세탁…더는 ‘가상’ 아닌 세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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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20면

게임의 사회학

게임의 사회학

게임의 사회학
이은조 지음
휴머니스트

가상 세계, 가상 화폐, 가상 현실. 디지털로 구축된 무엇인가에 흔히 ‘가상’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곤 한다. 편리한 조어지만, 가상 세계는 더이상 가상이 아니다. 비트코인 투자로 실제 벼락부자나 벼락거지가 된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물건을 구입하고, 강의를 듣고, 업무를 보며 소통한다. 콘서트와 선거 유세까지 이뤄진다. ‘메타버스’는 이미 현실이다.

게임은 디지털 세계를 앞장서서 내다보는 ‘척후병’이다. 게임에서는 20년 전부터 참여자들이 소통하고 협력하고 자원을 획득하고 경쟁했다. ‘길드’와 ‘혈맹’을 이루고 전쟁을 벌였다. 심지어 혁명이 일어나 제국이 무너지기도 한다. 저자는 게임 ‘리니지’에서 2004년부터 수년간 이어진 이른바 ‘바츠해방전쟁’을 온라인에서 일어난 ‘프랑스혁명’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전쟁에 이겨 성주가 되면, 더 좋은 자리에서 사냥하고, 세금도 거둘 수 있다. 게임 속 가상화폐는 현실에서도 금전으로 거래된다. 온라인에서 벌이는 전쟁이지만, 실존하는 경제적 가치를 놓고 충돌하는 진짜 전쟁이기도 하다.

현실이 된 게임은 의미 있는 연구의 대상이다. 게임회사에서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저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인센티브와 페널티는 게임 속에서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사용자 간의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몰락하는 길드와 번성하는 길드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특히 게임 속 아이템의 현금 거래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게임 속 아이템은 수천만 원에 거래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시간과 현금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적이다. 아이템 판매자는 돈을 벌고, 구매자는 아이템 획득에 필요한 시간을 번다. 아이템 현금 거래가 활발해지면 더 많은 사용자가 게임에 참여하기에 게임 회사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아이템 현금 거래가 고도화되면서 선진국과 노동력이 싼 개발 도상국 사이의 국제 분업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실물 경제가 작동하면서 게임이 범죄의 도구로 변질되기도 한다. 아이템 현금 거래는 탈세, 불법 증여, 돈세탁의 창구로 기능할 수도 있다. 또 절도나 사기 등의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현상을 연구하는 ‘게임사회학’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메타버스’ 세상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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