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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능력자들은 왜 오사마 빈 라덴을 얕봤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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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20면

다이버시티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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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 사이드 지음
문직섭 옮김
위즈덤하우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다양성은 어떻게 능력주의를 뛰어넘는가’라는 부제로 이 책의 핵심과 저술 의도를 요약한다. 다양성 결여로 능력주의가 실패한 사례로 9·11테러 저지 실패를 꼽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지원자 2만 명당 한 명꼴로 직원을 뽑을 정도로 능력주의를 신봉한다. 문제는 그렇게 뽑아놓으니 WASP로 불리는 앵글로 색슨계 백인 남성에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인 획일적인 집단이 됐다는 사실이다. ‘동종선호’ 채용관례다. 여성이나 유색인종·라틴계·유대인은 물론 가톨릭 신자도 드물었다.

이처럼 관점·사고방식·신념이 비슷한 사람들이 유유상종하면서 ‘쌀처럼 하얀 동질의 백색 문화’가 지배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가안보에는 능력 제일주의가 필요하다’는 해명에 밀렸다. ‘동질집단’ CIA는 수많은 사전 신호를 무시하다 결국 9·11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2001년 파키스탄 언론인과 인터뷰하는 오사마 빈 라덴(왼쪽)과 그의 사후 후계자가 된 아이만 알자와히리 . [로이터=연합뉴스]

2001년 파키스탄 언론인과 인터뷰하는 오사마 빈 라덴(왼쪽)과 그의 사후 후계자가 된 아이만 알자와히리 . [로이터=연합뉴스]

CIA의 엘리트 분석가들은 수염을 기르고 허름한 차림새로 아프가니스탄 토라보라 동굴의 모닥불 옆에 쭈그리고 앉은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동영상을 보고 무시했다. ‘야만인’이 미국 같은 첨단 기술 강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빈 라덴은 지적능력이나 기술에서 원시적이지 않았으며, 지하디스트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미국을 상대로 한 자살공격에 나섰다. 게다가 CIA 요원 중에는 중국어·한국어·이란어(파르시)·아랍어·파슈토어, 그리고 힌디어·우르두어 구사자가 거의 없었다. 인지적 동질성이 만든 짙은 안개 때문에 공격 징후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구성의 다양성과 함께 지적되는 게 집단 내 자유로운 의견의 교환이다. 지위·경험·능력 등에 밀려 입을 닫고 지배적 인물의 판단에만 의존하고 지시에만 복종하면 종종 비극이 벌어진다. 지은이는 1996년 5월 10일 여덟 명의 사망자를 낸 에베레스트 등반사고와 항공기관사가 기장에게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다 추락에 이른 78년 12월 28일 유나이티드항공 173편 사고는 모두 그렇게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보편화한 ‘끌고 다니는 여행 가방’에도 이런 사연이 담겼다. 미국 가방회사의 개발 담당 임원인 데이비드 더들리블룸이 58년 이를 개발하자 회사 회장은 “도대체 누가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겠느냐”며 비웃었다. 구성원 대부분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최고위층이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조직은 이처럼 기존 아이디어에 매몰돼 사회 변화를 이끄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거부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서로 다른 생각·사고방식·관점을 인정하고 활용하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스웨덴 북부의 산골마을 칼스코가는 눈이 내리면 자동차 도로에서 시작해 보행로, 자전거길의 순으로 제설 작업을 해왔다. 대부분 남성인 지방의회 공무원들의 결정이었다. 누구도 이 순서가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별로 이동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찻길보다 보행로와 자전거길의 눈을 먼저 치우기로 했다. 남성은 자동차 통근을 선호하지만, 여성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직장에 가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이용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프랑스 66%, 미국 필라델피아 64%와 시카고 62%였다.

다양성을 존중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 영장류 연구에서 개인주의적인 미국 동물학자들은 수컷의 지배와 짝짓기 접근권을 파악했고, 집단주의적인 일본 연구원들은 암컷에도 서열이 있으며, 영장류 무리는 동일한 암컷의 자손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영국 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기술자문위원회에 첨단기술 스타트업 창업자, 교육 전문가, 럭비팀 감독, 사이클 코치, 사관학교의 첫 여성교장, 탁구선수 출신의 지은이 등 다양성 넘치는 인물로 이뤄진 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이들은 집단지성을 발휘해 뻔한 소리 대신 기존 가치체계나 규범에서 벗어난 ‘반항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문제점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었다는 게 지은이의 경험담이다.

지은이는 기후변화·빈곤과 질병 치료, 신제품 디자인 등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려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발 물러서서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논문 작성, 특허 출원, 펀드 운용 등 도전적인 일은 집단이 수행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폭넓은 관점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성과를 내는 데 집단지성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단순히 젠더·인동·나이·종교 등을 넘어 관점과 통찰력, 경험, 사고방식의 차이를 두루 아우르는 인지 다양성을 강조한다. 배경과 경험이 다른 사람은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이민자인 아버지와 웨일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은이는 옥스퍼드대에서 PPE(철학·정치학·경제학)를 전공해 우등(상위 30%) 졸업하고 국가대표 탁구선수로 활약했다. 그런 인물이 능력주의를 넘어서는 다양성을 주장하니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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