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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사람이 임자가 아닐 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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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21면

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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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마이클 헬러, 제임스 살츠먼 지음
김선영 옮김
흐름출판

재화든 서비스든 상품은 제한적인데 원하는 사람은 넘친다. ‘선착순’은 이럴 때 누구나 알기 쉽고 동의하기 쉬운 규칙이다. 명품시계도, 포켓몬빵도 먼저 온 사람이 임자가 된다.

그런데 좀 다른 길도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무료 방청이지만, 대행업체들은 시간 없고 돈 많은 로비스트·변호사 등에게 최대 6000달러를 받고 대신 줄을 선다. 참고로, 실제 줄을 서는 노숙자·아르바이트생 등이 받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대행 서비스는 과연 문제일까, 아니면 묘책일까. 차라리 방청권을 경매해 그 수입을 좋은 일에 쓰면 어떨까. 이 책 『마인』의 공저자이자, 미국의 법학전문대학원·환경대학원 소속인 두 교수는 또다른 방법도 제시한다. 법정 공방을 온라인에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선착순을 비롯해 점유, 노동, 귀속, 자기 소유권, 상속 등 6가지는 소유권을 주장할 때 동원되는 대표적인 논리다. 이 책은 이런 논리가 어떻게 형성됐고 지금 시대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 변화 양상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풍부하게 보여준다.

올해 3월 품귀현상을 빚은 포켓몬빵을 사려는 시민들이 서울의 한 마트에 줄을 선 모습. [뉴스1]

올해 3월 품귀현상을 빚은 포켓몬빵을 사려는 시민들이 서울의 한 마트에 줄을 선 모습. [뉴스1]

이를 통해 실감하게 되는 건 소유권이 절대적 진리도, 천부인권도 아니란 점이다. 책에 따르면 소유권은 “사회공학적 선택”이다. “발견해낸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도출해낸 결론”이다. 누구의 소유로 할 것이냐 이전에 소유권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먼저다. 소유권은 이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바꿀 수 있다.

저자들은 농구팀이 유명해 경기마다 표구하기가 치열한 듀크대를 예로 든다. 이 대학 학생들이 코트 바로 옆 응원석에서 경기를 보는 방법은 선착순이 아니다. 경기장 앞에서 2박3일 야영하며 수시로 출석체크를 하는 ‘캠프아웃’ 행사를 거쳐야 한다. 듀크대의 관심은 효율이나 공정이 아니다. “귀하고 한정된 자원을 특정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최적으로 분배하는 것”이자 열광적 팬덤을 키우고, 이들에게 응원석을 주는 것이다.

또 하나 실감하게 되는 건 소유권을 어떻게, 누가 설계하느냐의 중요성이다. 저자들은 ‘배제와 통제’ ‘자유주의적 공유’ 등 소유권 설계에 동원되는 수단들을 구체적 사례 속에 녹여내며 나름의 견해를 뚜렷이 밝힌다. 특히 ‘내 것이면 네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배제’가 아니라, 배제와 통제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눈앞에 보이는 찬반양론에 매몰되는 대신 틀을 깨고 더 큰 그림을 가리키는 것은 이 책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저자들은 ‘온/오프’의 이분법적 스위치 대신 조절기 같은 방식을 강조한다. 예컨대 장기매매도 찬반만 아니라 의료기관에 한정해, 가격 상한선을 두고 구매 가능하게 하는 식의 방안을 제시한다.

워낙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는 책인데, 저자들은 이른바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도 적잖은 분량을 할애했다. 지적재산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미국 중심의 이야기일테지만, 저자들은 지식노동에 대한 지나친 보상이 후유증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신기술 특허의 복잡한 소유권이 신약의 출시를 막거나, 작가의 사후 여러 후손들에게 소유권이 쪼개져 대물림되면서 작품이 아예 묻혀버리는 현상을 지적한다.

특히 의회에 로비해 미키 마우스 저작권 보호 기간을 수십 년씩 계속 연장해온 디즈니를 강하게 비판한다. 창작자 월트 디즈니는 이미 고인이니 창작자의 의욕을 북돋우지도, 공익을 창출하지도 못하고 기업의 이익만 될 뿐이라는 논지다. 흥미로운 건 이런 디즈니도 변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대중문화 상품이 그렇듯, 팬들의 창의적인 활용은 팬덤을 키운다. 이제는 팬이 만든 걸 디즈니가 따라하기도 한단다. 저자들은 ‘미키 마우스 보호법’의 다음 만료 시한인 2024년 전후에는 디즈니가 연장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정말 그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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