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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데이터 자아의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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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31면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사람들은 흔히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잘 모른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절절매는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삶이란 핵심을 집약하면 고작 몇 줄로도 넘치는 셈이다. 버나드 쇼는 한 문장뿐이었다. “우물쭈물 어슬렁대다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 인간의 삶은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 모르는 채 우물쭈물, 우왕좌왕, 갈팡질팡 살다 불현듯 죽음 앞에 서는 셈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나, 누구인지 설명하려면 흐릿해진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람들은 자아의 선명도를 높이려고 발버둥 친다. 자기 측정, 즉 자신을 살피고 관조해서 정확히 파악하는 힘은 우리가 ‘좋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증삼·몽테뉴·프로이트와는 달리
데이터로 자기 분석 가능한 시대
자신에 대한 추적·분석 쉬워질수록
삶의 중심에 가치에 대한 성찰 둬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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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증삼은 자기 측정을 군자로 나아가는 출발점으로 여겼다.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가지로 살핀다. 남을 위해 일을 꾸미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더불어 사귀면서 믿음직하지 않았는가? (스승에게) 전해 받은 바를 익히지 않았는가?” 일에 충실하고 벗에게 미더우며 끝없이 배우고 익히는 일은 좋은 인간으로 살려면 필요한 핵심 지표였다.

나를 아는 일은 오랜 시간 반복해 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몽테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평생 『에세』를 쓰면서 일상을 기록하고 자기를 고쳐 썼다.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추적하고 성찰하며 구축하는 힘을 기른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자아를 이룩하고 불안을 이겨내며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을 역시 평생 연구했다. 이를 통해 그는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위보다 더 심층을 살펴서 자기의 윤곽선을 그리는 기술을 보여 주었다.

과거엔 자신을 파악하려면, 이들처럼 오랜 명상과 성찰, 학습과 연구에 집중하는 등 큰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나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누구나 자신을 기록해서 저장하고, 언제든 분석할 수 있다. 자아 통계학과 정량적 자기 분석 기술이 증삼식 자기 성찰, 몽테뉴식 자기 서사, 프로이트식 자기 분석보다 선호되는 이유다. MBTI 성격유형 검사도 그중 하나이다.

MBTI는 외향형과 내향형, 감각형과 직관형, 사고형과 감정형, 판단형과 지각형의 조합에 따라 인간을 16가지 성격유형으로 분류한다. 많은 심리학자가 비판하듯, 분석 자체가 허술한 데다 예측 타당성은 엉망인데도, 사람들은 자주 이를 통해 인생을 설계하고 자아를 표현한다. 인터넷 등에서 누구나 ‘간단히’ 접근해 시도할 수 있고, 어떤 유형이 나와도 우리 인생에는 그렇게 볼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를 진로상담에 이용하는 황당한 대학이나 인사관리에 활용하는 한심한 기업도 있다. 간단한 설문 몇 가지로 인생의 밑그림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일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심심할 때 해 보는 놀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기 분석은 어떨까. 『인에비터블』(청림출판 펴냄)에서 미국 디지털 문화 전문가 케빈 켈리는 자기 추적자가 빠르게 퍼져 가고 있다고 말한다. 휴대 전화, 디지털 밴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자우편 등 간단한 장치를 이용해 누구나 자신의 식단, 건강 상태, 수면 패턴, 기분, 혈액, 위치, 생산성 등을 장기적으로 축적하고 분석할 수 있다.

생각이나 활동 등도 ‘인생 스트림’에 빠짐없이 기록된다. 우리가 순간순간 기록한 메모, 사람들과 나눈 대화, 업무를 위해서 주고받은 메일뿐 아니라 우리가 읽는 책, 듣는 음악, 보는 드라마, 먹는 음식, 방문한 장소 등 바란다면 인생 전체를 비트로 전환해서 자아의 연대기를 쓸 수 있다. 『관내 분실』에서 소설가 김초엽은 한 사람 인생을 도서관에 보관하는 기술을 ‘마인드 업로딩’이라고 불렀다. 완전 기억(total recall)이 보관된 이 도서관에서 ‘마인드’가 분실되면 한 인간의 삶 전체가 함께 소실된다.

인생 자체가 저장되고 색인되어 검색하고 재생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자아가 달라지고 인생을 읽는 기술이 바뀔 수 있다. 최대치 투명성에 노출된, 완전 기억을 가진 자아는 통계와 숫자를 이용해 자기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량적 자아’가 출현하는 것이다.

『내러티브 & 넘버스』(한빛비즈 펴냄)에서 애스워드 다모다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컴퓨터 기술과 숫자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를 ‘넘버 크런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층층이 쌓인 숫자 뒤에는 편향이 숨어 있고, 정밀해 보이는 추정치의 가면 아래에는 부정확이 도사리고 있다.” 데이터는 흔히 오염되기 쉽고, 자료가 많다고 오차가 없어지진 않는다.

자료는 프레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숫자를 과신하다 상식을 잃는 경우도 흔하다. 『변신』에서 카프카가 보여 주었듯, 숫자에 결박된 자아는 인간을 벌레로 만든다.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린 삶은 하찮을 뿐이다. 다모다란은 데이터와 이야기를 잇는 것이 가치 평가라고 말한다. 추적과 분석이 쉬워질수록 삶의 중심에는 가치에 대한 성찰이 놓여야 한다. 가치의 보정을 받지 않는 데이터는 공허해진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은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넘치는 데이터를 살피고 돌이키는 성찰의 힘이 더욱더 절실해진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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