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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천문 왕국…홍대용의 혼천시계 복원, 자긍심 높일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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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26면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 박사

윤용현 박사가 국립중앙과학관 연구실에서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윤용현 박사가 국립중앙과학관 연구실에서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이다. 연구·개발(R&D)이란 것이 과거와 현재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밝혀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과학기술 연구가 과거를 향할 때도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인사동 일대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한꺼번에 발견돼 화제가 됐다. 당시 세간의 관심은 대부분 금속활자에 쏠려 있었지만, 과학계에서도 흥분할 만한 유물이 나왔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조선 전기 과학유산인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물시계의 부속품 중 하나인 ‘주전(籌箭)’의 일부로 보이는 동(銅)제품이 그것이다.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사과장을 맡고 있는 윤용현(58) 박사는 이런 역사 속에 남은 흔적을 토대로, 전통 과학기술을 복원하는 전문가다. ‘복원’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을 원래 상태로 다시 되돌리는 것’을 뜻하지만, 주로 문화재를 수리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윤 박사의 복원 대상은 전통 과학기술이다. 그는 한국 명종(名鐘) 중 하나인 2003년 통일신라시대 선림원종 복원을 시작으로, 금속활자·상평통보 등을 전통기술 그대로 복원했다. 대표적 복원은 세종 때 과학기술자 장영실이 마지막으로 만든 역작인 자동물시계 ‘흠경각 옥루’다. 지난 7월에는 앞서 인사동에서 발굴된 주전을 바탕으로 보루각 자격루의 핵심 작동원리를 규명, 복원 설계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 시절 사학도였지만 이후 역사와 문화, 과학기술을 모두 다루는 융합형 과학기술인으로 살아왔다.

사학 전공, 융합형 과학기술인 변신

윤 박사가 복원한 장영실의 자동물시계 ‘흠경각 옥루’. 실물이 남아있지 않아 문헌에 의지해 복원했다.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윤 박사가 복원한 장영실의 자동물시계 ‘흠경각 옥루’. 실물이 남아있지 않아 문헌에 의지해 복원했다.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취재진이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을 찾았을 때 그는 책상 옆 나무상자 위에 복잡한 ‘기계’를 두고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과학 사상가였던 홍대용(1731~1783)이 만들었다는 ‘천문시계’를 복원하는 중이었다. 상자 위 구(球) 모양의 철구조물은 태양계의 행성 등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체관측기구 혼천의(渾天儀)였다. 그 옆엔 복잡한 톱니바퀴가 달린 자명종(鐘)이 설치돼 있었다. 종 아래 나무상자 속엔 추(錘) 2개가 매달려 있었다. 추의 무게를 이용해 시계와 혼천의가 움직이고, 또 1각(15분)마다 종이 울리게 한 시계다. 윤 박사는 “홍대용의 천문시계는 숭실대 박물관에 혼천의 일부가 남아있고, 나머지는 문헌으로만 기록돼 있어 2020년 복원을 시작했다”며 “18세기 민간에서 그 당시에 유럽과 일본에서 유행한 자명종 복원은 물론, 앞서 17세기 송이영의 혼천시계 전통을 잇고 있는 18세기 홍대용의 혼천시계를 복원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 현종(1659~1674) 시절 천문학자였던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는 추동식 시계장치로 작동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혼천의였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동양의 혼천의와 서구의 시계가 합쳐진 혼천시계라는 형태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었다. 동양과학사의 세계적 권위자 조지프 니덤(1900~95)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세계 유명 과학 박물관들이 반드시 복제품을 만들어 소장해야 할 인류의 위대한 과학문화재”라고 극찬한 바 있다. 송이영의 혼천시계는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320호로 지정됐고, 현재 고려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윤 박사는 2009년 당시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등과 함께 송이영의 혼천시계 ‘작동모델’을 만들었다. 국보로 남은 혼천시계는 오래된 탓에 일부 부품이 사라져 작동하지 않았다. 송이영과 홍대용의 혼천시계는 둘 다 추의 무게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송이영의 것은 진자를 이용한 데 비해, 이후 만들어진 홍대용의 것은 크기도 3분의 1로 줄어들고, 좀 더 정밀한 ‘플로이트 탈진장치’를 사용했다.

2019년 9월에는 그간의 전통시계와 차원을 달리하는 흠경각 옥루가 윤 박사의 손으로 복원됐다. 농사짓는 들판 한가운데 푸른 산이 솟아 있고, 정상에 해와 달이 움직이는 모양을 한 자동 물시계였다. 자격루가 조선시대 백성을 위한 표준 물시계였다면, 옥루는 장영실이 세종만을 위해 만든 독특한 모양의 자동 물시계다. 물통 부품 일부가 남아있는 자격루와 달리 그간 문헌 속에서만 존재해 왔다. 세종실록 내 흠경각기(欽敬閣記)에서는 “흠경각 안에 호지(糊紙·풀 먹인 종이)로 높이 7척(약 2.3m) 가량 산을 만들고 금(金)으로 태양의 모형을 만들어 오운(五雲)이 태양을 에워싸고 산허리 위로 가며, 낮에는 산 위에 뜨고 밤에는 산중에 지면서 일주(一周)하는데, 절기에 따라 고도(高度)와 원근(遠近)이 태양과 일치한다”고 그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윤 박사는 “평생의 복원 작업 중 옥루가 가장 어려웠다”며 “실물이 하나도 안 남아있어 오직 문헌에 의지해서 복원의 실마리를 풀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옥루 복원을 위해 중국 송나라 때 만든 자동물시계 수운의상대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은 물론, 중국에 시계 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의 흔적을 위해 터키 앨제재리 박물관까지 다녀왔다. 윤 박사는 “홍대용의 천문시계 복원이 끝나면 송이영의 혼천시계와 쌍벽을 이뤘던 이민철(1631~1715)의 수차형 혼천시계와 원구일영(圓球日影·공모양의 해시계)을 작동시키는 연구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홍대용의 혼천시계.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홍대용의 혼천시계.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복원된 자격루와 옥루 등은 아직 직접 볼 수는 없다. 자격루는 그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었으나, 얼마 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으로 이전됐다. 과학관은 최근 자격루를 포함한 관련 전시장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중앙과학관은 2024년 4월 개관을 목표로 2층 한국과학기술사관 내에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시계특화코너를 만들고 있다. 신라시대의 4단 물시계를 시작으로 세종시대 자동물시계 겸 국가표준시계였던 보루각 자격루(1994년 남문현 건국대 교수 복원), 흠경각 옥루, 송이영과 홍대용의 혼천시계, 조선 후기 휴대용 해시계였던 초소형 앙부일구 등 총 30여 점에 이르는 한민족 역사 속 거의 모든 시계가 전시된다. 윤 박사는 “조선은 천문과 시계의 왕국이었다”며 “앞으론 국내에서 우리 역사 속 천문과 시계에 대해 알고자 하면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으로 반드시 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계 특화코너 2024년 문 열 것

조선의 과학을 얘기한다면서 왜 시계일까. 조선의 최고 ‘과학인 임금’ 세종대왕의 대표적 과학 치적 중 하나가 천문(天文)이었고 시계였다. 농경사회에서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선 필요했던 대표적 과학기술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이었다. 일식(日蝕)이 하늘의 징벌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 임금은 일식 예측을 통해 하늘과 소통하는 존재임을 백성에게 인식시켜 왕의 권위를 지켜야 했다. 조선은 개국 당시 명나라의 역법(달력을 만드는 방법)인 대통력(大統曆)을 사용했다. 역법이란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하여 세시(歲時)를 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명의 역법은 조선에선 틀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력이 위도와 경도가 다른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종은 장영실·이순지 등을 시켜 한양이 중심이 된 천문관측기기를 만들게 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고유의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어냈다. 시계 또한 천문관측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도성의 문을 여닫고 때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것 또한 임금의 역할이면서, 권위였다. 경복궁 내 보루각에서 자격루가 처음 시간을 알리면 연이어 북을 치고, 종을 치면서 도성 전 지역에 밤낮으로 시간을 알렸다.

조선 초기의 과학기술 수준을 동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문관측기와 시계 외에도 로켓무기의 일종인 신기전, 금속활자 등은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로 꼽힌다. 1400~1450년 50년간 15세기 동서양의 기술을 집대성한 일본과학사 기술사전에 따르면 당시 총 63개의 기술 중 29개가 조선 세종 때 나온 것이다. 나머지는 유럽 28개, 중국 5개 등이다. 일본 기술은 하나도 없었다. 윤 박사는 “일본이 꼽은 29개 조선의 기술 중 대표적인 것이 보루각 자격루와 흠경각 옥루”라며 “문헌이나 일부 부품만으로 남아 있는 당시의 과학기술 유산을 복원하는 것은 연구 그 자체 뿐 아니라 국민적 자긍심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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