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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북전단 살포 자제" 첫 요청…전단 둘러싼 尹 정부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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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23일 민간 단체를 향해 "대북 전단 살포를 자제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대북전단 금지법'(남북관계 발전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지만, 접경 지역 주민들의 안전 등 '상황 관리'를 위해선 전단 살포를 말려야 하는 고민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전단 살포 자제 촉구"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등 살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며 "전단 등 살포행위를 자제해 줄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자제를 촉구하는 공식 입장을 별도로 발표한 건 처음이다.

앞서 지난 5일 박상학 자유북한방송대표는 보도자료를 내고 전날 "대형 풍선 20개에 진통제 5만알, 비타민C 3만알, 마스크 2만장을 함께 북한에 날려보냈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사진 속 현수막에는 '악성전염병 원인은 대북전단?', '김정은, 김여정을 박멸하자' 등 문구가 있었다.

이에 더해 한ㆍ미 북한인권단체 등이 오는 25일부터 일주일동안 공동 주최하는 '북한자유주간' 행사 기간에 또 대북전단 살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박상학 대표는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24일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한국에 도착하면 북한자유주간 중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는 매년 4월 열리다 올해는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이달로 연기됐다. 지난해 4월 행사 당시 자유북한운동연합은 10개의 대형 애드벌룬을 이용해 대북전단 50만장을 살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 4일 인천시 강화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약품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모습. 자유북한운동연합. 뉴스1.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 4일 인천시 강화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약품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모습. 자유북한운동연합. 뉴스1.

"北 사실 왜곡 유감"

통일부는 이날 "전단 살포가 실제 이뤄질 경우 수사당국에서 수사할 것"이란 입장을 밝히는 동시에,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공언한 북한을 향해서도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이 부대변인은 "북한이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대북전단에 전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며 "북한이 사실 왜곡 및 우리 국민들에 대한 보복 조치 등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의 어떤 위협과 도발에 대해서도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연설에서 대북 전단을 코로나19 전파의 원인인 "색다른 물건짝"으로 지칭하며 "대응도 아주 강력한 보복성 대응을 가해야 한다. 비루스는 물론 남조선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18일 담화에서도 김 부부장은 "우리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들을 계속 들여보내며 (중략) '식량공급'과 '의료지원'따위를 줴쳐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더욱 무섭게 폭발시킬 뿐"이라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불필요한 北 자극 피하는 듯

윤석열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단 자체에 대해 "외설적 선전 및 가짜뉴스로 채워졌다"며 2020년 12월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형사 처벌이 가능하게 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선과는 차이가 있다. 현행법인 대북전단금지법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소식통은 "윤석열 정부는 대북 전단 자체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와 북한 주민의 알 권리 등을 고려해 정부가 가치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안 및 형사 처벌로 막는 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 단체 계도를 중심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날 통일부의 '대북전단 관련 입장' 발표에는 정부가 지난달 '담대한 구상'이라는 대북 정책 윤곽을 내놓은 가운데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2020년 6월 북한은 대북전단을 빌미 삼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여당이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로서는 대북 전단 관련 대응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정부는 법을 통해 살포를 막는 대신 민간 단체 설득 및 협력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이며, 현재 대남 도발의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북한에 괜한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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