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파' 조폭이 법을 이겼다…17년 도주했더니 생긴 일 [그법알]

중앙일보

입력 2022.09.23 06:00

업데이트 2022.09.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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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재판에 나오지 않고 도망치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15년 넘게 도망을 다닌 조직폭력배 A씨의 이야기로 살펴보겠습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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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91] 재판 안 받고 도망친 조폭의 승리...법 개정에도 소용 없었다

1990년대, 창원 일대에는 조직폭력배들의 세력다툼이 한창이었습니다. A씨는 자신의 조직이 점점 약해져 거리를 떠돌게 되자, 유흥가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지난 1999년 10여명과 함께 '경남 박명수파'를 결성합니다. A씨는 부두목급인 참모 역할을 맡아 두목 박명수씨를 보좌했죠. 이들의 다른 이름은 '재건파'였습니다. '조직 내부의 일은 외부에 알리지 말라', '선후배 간 위계질서를 칼같이 지켜라', '선배를 보면 90도로 인사한다'와 같은 강령도 있었다고 하네요. 이들은 유흥업소를 상대로 돈을 뺏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모았습니다.

1999년 9월, 재건파의 조직원이 주점 앞에서 다른 조직원에게 얻어맞는 일이 생깁니다. "왜 나타났느냐" 등의 이유였죠. 재건파 조직원들은 분노했고, 두목 박씨는 상대 조직원을 납치하라고 지시합니다. 실제로 A씨를 포함한 조직원들은 흉기를 가지고 다니며 거리를 탐색하다가, 상대 조직원 한 명을 납치해 차에 태워 공터로 끌고 가 폭행해 상해를 입혔습니다. 이 사건에 가담한 A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됩니다.

이미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으로 여러 차례 교도소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요? A씨는 돌연 도망쳐 자취를 감췄고, 재판은 한 번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첫 재판 기일은 2002년 5월이었는데, 1심 판결은 17년이 지난 2019년 6월에야 나왔죠. 게다가 1심 재판부는 '면소', 즉 소송 절차가 끝났다는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A씨를 이 혐의로는 더는 처벌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관련 법령은?

먼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를 보겠습니다. 1심 재판 도중 피고인이 나타나지 않고, 6개월 넘게 피고인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을 때는 피고인 불출석 상태로도 재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형이 사형이나 무기징역,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의 경우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A씨 폭력행위처벌법상 특수상해 등의 혐의는 법정형이 징역 10년이 넘기 때문에 A씨가 꼭 출석해야만 재판을 할 수 있었죠.

재판의 시효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도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을 재판에 넘긴 뒤 판결이 25년 넘게 확정되지 않으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25년'이 된 것은 2007년 12월 법이 개정된 이후부터입니다. 2007년 전에는 기소 후 15년간 확정판결이 안 나오면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봤죠.

법원 판단은?

결국 2007년 법 개정을 기점으로 25년이냐, 15년이냐가 갈리게 된 상황. A씨가 기소된 건 2000년이니, 개정법을 적용하면 A씨는 2025년까지 다시 법정에 서야 하겠죠. 하지만 구법을 적용하면 2015년에 이미 A씨에 대한 공소시효는 완성된 것이 됩니다.

1심 재판부는 법 개정 당시 생긴 부칙을 들여다봤습니다. 부칙조항에는 "개정법 시행 전에 범한 죄에 대하여는 종전의 규정을 적용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A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1999년으로 2007년보다 한참 전이니, 25년이 아닌 15년을 적용하는 게 맞는다는 겁니다.

이에 검찰은 해당 부칙이 제249조 제2항이 아닌 제1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7년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바뀌는 등 제1항에도 변화가 있었거든요. 검찰 입장에서는 이 부칙이 제2항에는 적용이 안 된다고 보고, 2025년까지 시간을 벌어 A씨를 어떻게든 데려와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검찰의 항소와 상고에도 법원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23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칙 조항의 취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2007년 형사소송법이 시효를 늘리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은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조치인 점 등을 고려해, 법 개정 전에 이미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개정 전 규정을 적용하라는 뜻으로 부칙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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