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를 앞둔 매년 9월은 기업 대관(對官) 직원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다. 국감에서 본인 소속 기업의 문제가 다뤄질지 미리 확인해야 할 뿐 아니라 기업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물밑 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표가 국감장 증인석에 서는 것은 기업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주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다.
22일 국회 각 상임위원회는 의원실별 국감 증인 신청 명단을 취합했거나, 취합을 마치고 어떤 증인을 최종 채택할지 여야 협상을 시작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이번 국감에서 CEO(최고경영자)는 가급적 부르지 말자”며 국감 문화의 변화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신청 명단엔 다수의 기업인이 올랐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플랫폼 기업 대표들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민주당은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민생법안으로 선정하고, 정기국회에서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플랫폼 기업의 문제 등을 국감에서 따져 묻겠다는 계획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 남궁훈·홍은택 카카오 대표, 강한승·박대준 쿠팡 대표, 김봉진·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등이 국감 증인 신청 명단에 올라 있다. 해외 기업 중엔 구글과 넷플릭스 등의 한국 대표가 증인으로 신청됐다. 과방위의 단골 국감 증인인 통신 3사(SKT·KT·LGU+) 대표도 신청됐다.
노동 이슈를 다루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기업인의 증인 출석이 관심사다. 임이자 국민의힘 간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 등을 질의하기 위해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현대건설·대우건설 등 건설사 대표를 비롯해 현대중공업·포스코 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민주당에선 노웅래 의원이 특정 일용직 노동자에게 일감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를 증인 신청했다. 또 스타벅스의 기획상품 서머 캐리백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된 사건과 관련해 책임자인 송호섭 스타벅스 대표도 증인 신청 명단에 적었다.
그 외 기업인을 자주 부르는 상임위 중 하나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여야가 총 160여명의 증인을 신청했다. 산자위 관계자는 “증인 신청 명단에 4대 그룹(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LG) 총수도 들어 있다”고 말했다. 산자위는 신청 증인이 너무 많아 오는 26일까지 여야 각각 20명으로 증인 명단을 추려 다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국감 때 기업인을 증인으로 부르는 횟수는 늘고 있다. 17대 국회 국감(2004~2007년)에서 연평균 52명이었는데, 18대(2008~2011년) 77명, 19대(2012~2015년) 124명, 20대(2016~2019년) 159명으로 늘었다. “기업인을 우선 부르고 보자”는 국감 분위기가 점차 퍼진 영향이다. 국회 한 보좌관은 “정부 측 증인보다는 기업인 증인이 더 주목받을 수 있으니 무조건 부르고 보는 의원들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국감 증인 신청이 ‘기업인 길들이기’라는 시각도 있다.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총수나 대표보다는 전무나 이사 등 임원진이 현안을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은데 꼭 총수나 대표를 부르는 것은 길들이기 아니겠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