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푸틴의 동원령, 되레 러시아군 망칠 수 있다…근거 셋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2.09.23 05:00

업데이트 2022.09.23 06:08

9월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부분 동원령에 서명했다. 오늘부터 시행될 것이다”라고 전격 발표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동원 대상은 전체 예비군 약 2500만명 중에서 1%에 해당하는 약 30만명”이라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러시아가 동원령을 발령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투력 보강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러시아군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동원령이 전투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불가피한 선택

냉전 시기, 소련군의 평시 병력은 약 340만 명에 달했다. 전시에 동원령이 발령되면 1~2주 이내 약 500만명이 추가돼 총 병력은 약 840만명 이상으로 증가할 계획이었다. 이런 대규모 군대에 필요한 장비와 물자를 관리하기 위해 보급창에만 약 120만 명이 근무했다.

냉전 이후, 러시아군은 동원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해체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제2차 체첸 전쟁(1999년)과 조지아 전쟁(2008년)이 있었지만, 총참모부는 동원령을 건의하지 않았다. 소규모 전쟁이 있을 때마다, 전체 규모 약 10만명 이하 범위 내에서 특수부대와 임시편성부대로 작전을 수행했다.

트럭에 타기 위해 줄서며 기다리고 있는 러시아군 병사들. AP=연합

트럭에 타기 위해 줄서며 기다리고 있는 러시아군 병사들. AP=연합

이런 경험을 기초로, 러시아군은 2008년에서야 대규모 동원을 포기했다. 대신, 계약에 의한 모병으로 약 100만명의 병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징집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하고, 징집병사들이 해외로 파병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모병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까지 모병 인력은 전체 병력의 약 40% 미만이었다.

문제는 해외 군사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제 병력이 약 20만~30만명으로 한정됐다는 점이다. 더욱이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작전지속의 한계도 있었다. 2012~13년 러시아군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미군의 주 방위군 제도와 유사한 방법의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없었다. 결국 푸틴의 동원령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질적인 전투력 증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되지 않은 동원 병력

동원 병력이 장비 및 물자, 훈련 측면에서 준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009년부터 징집 병사들의 복무 개월이 12개월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30대 초반까지의 예비군은 부대에서 약 6개월만 생활하고, 전술훈련을 숙달하기도 전에 전역했다. 이런 병사들에게 제대로 전투력 발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러시아 경찰이 21일(현지시간) 동원령 반대 시위를 벌인 여성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

러시아 경찰이 21일(현지시간) 동원령 반대 시위를 벌인 여성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

더욱이, 동원을 위해 필요한 장비와 물자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 초까지 지속한 러시아의 경제위기는 동원 장비 및 물자 관리체제를 포함한, 우선순위가 낮은 군사 시스템부터 와해시켰다. 2008년 이후 본격화한 국방개혁은 현역 장병과 부대에만 집중됐다. 동원전력에 관심을 갖고 예산을 투입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개별 보충의 취약성

동원한 병력을 전장에 보충하는 방법은 2가지다. 각개병사 단위로 보충하는 방법과 부대단위로 보충하는 방법이다. 전투력 발휘 측면에서는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바람직하다.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개별보충 방식을 적용했다가 실패했다. 80년대 전반적인 국방 시스템의 혁신을 거친 후, 미군은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는 부대보충 방식을 적용해 성공할 수 있었다.

땅에 놓인 러시아군 전차병의 헬멧, EPA=연합

땅에 놓인 러시아군 전차병의 헬멧, EPA=연합

러시아군은 개별보충 방식을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원한 병력을 수용할 부대가 준비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동부 및 남부 전선에 투입된 부대에서 사상자 발생으로 공석인 자리를 개별적으로 채운다는 의미이다. 이들이 기존 부대원들과 전투에 필요한 팀워크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래서, 신병의 절반 이상이 첫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전투의지 약화의 도미노 현상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되찾은 이지움 지역에서 10여 통의 러시아 병사 편지가 발견된 적이 있다. 편지에는 ‘전투의지가 고갈되었으며, 상부에 강제전역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개전 초기에 비해, 러시아 장병들의 전투의지가 약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세가 불리해질수록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이상, 러시아 국민들은 전시 동원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러시아(소련)는 79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94년의 제1차 체첸전쟁에선 동원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부작용을 우려해 동원령을 포기한 바 있다. 동원 병력의 전투의지가 전선에 있는 기존 병사들보다 강할 수 있을까? 도미노 현상처럼, 동원 병사들이 기존 병사들의 전투의지까지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지움에서 발견한 러시아군 병사의 편지. 강제전역을 희망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Andrii Bashtovyi 트위터 계정

우크라이나군이 이지움에서 발견한 러시아군 병사의 편지. 강제전역을 희망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Andrii Bashtovyi 트위터 계정

결론적으로 러시아군의 동원령은 전투력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전쟁지속 의지만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러시아군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신호이자, 실패의 신호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의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이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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