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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 뉴욕회담, 강제징용 문제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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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총회장 인근의 한 콘퍼런스 빌딩에서 열린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총회장 인근의 한 콘퍼런스 빌딩에서 열린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이하 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약식 양자회담을 했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회담한 후 2년9개월여 만이다. 두 정상은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이날 한·일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21일 낮 12시23분에 시작한 정상회담은 30분간 진행됐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북한 핵무력 법제화와 7차 핵실험 가능성 등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안을 해결해 양국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외교 당국 간 대화를 가속할 것을 지시하는 동시에 정상 간에도 소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결할 현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이 집중하고 있는 현안은 강제징용 문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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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일본 외무성은 회담 후 낸 보도자료에서 양국 정상의 만남을 ‘회담’ 대신 ‘간담(懇談)’이라고 발표했다. 회담의 수준을 낮춘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관계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일본도 공감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기대 수준을 낮춰 나가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겠다는 입장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말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비공식적이라는 뉘앙스가 강한 ‘간담’이라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한 것 자체가 외교가에서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며 “기시다 내각이 최근 하락하고 있는 지지율을 고려해 국내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실 이날 양국 정상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통령실이 지난 15일 “한·일이 서로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됐다”고 밝힌 뒤, 일본에선 양자회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이후 대통령실에선 ‘노코멘트’ 등의 반응으로 기류가 확 바뀌었고, 일각에선 무산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날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은 합의 과정을 거쳐 동시에 발표하는 게 관례였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측면에 대해 양측 간에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궁극적으로 회담을 하기까지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기로 합의했고, 한국은 그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외무성은 또 “양국 정상은 현안을 해결하고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릴 필요성을 공유하고,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구축해 온 우호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일치했다”고 밝혔다. ‘1965년 국교 정상화’란 표현을 굳이 사용한 것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당시 협정에서 일본의 배상 의무가 없다고 명시한 부분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일 정상회담 주요내용

한·일 정상회담 주요내용

윤 대통령은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두 차례 만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한·미 통화스와프 등 유동성 공급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과거 한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방문 때와는 달리 한·미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에 초청받아 참석, 행사장 무대 위에서 48초간 환담했다.

지난 1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國葬)에 참석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정치 일정 등을 이유로 뉴욕이 아닌 워싱턴DC로 직행했다. 이 때문에 유엔총회 연설도 당초 예정한 20일이 아니라 하루 뒤인 21일에 했고, 결과적으로 뉴욕 체류 기간이 줄어들면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의 양자회담 일정이 재조정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플랜B’를 작동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중요한 건 양 정상이 만난 총시간이 아니라 IRA, 통화스와프, 확장 억제 등에 대해 양측 NSC(국가안보회의)에 집중적인 검토를 지시했다는 점”이라며 “(실무선에서) 준비해 온 걸 교환하고 정상 간 확인을 받는 마침표를 찍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글로벌 펀드 회의가 그런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겠다고 판단해 계획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에는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개최한 리셉션에서도 잠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영국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개최한 리셉션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세 차례의 만남을 통해 한국의 우려 사항을 충분히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성한 실장은 “윤 대통령은 런던 및 뉴욕 방문 계기에 여러 차례에 걸쳐 바이든 대통령과 회동했다”며 “양 정상은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 금융 안정화 협력, 확장 억제와 같은 주요 현안에 관해 협의했다”고 소개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IRA에 대한 한국 업계의 우려를 설명한 윤 대통령은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 감축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한·미 간 긴밀히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한·미 간 계속해서 진지한 협의를 이어나가자”고 답했다.

달러를 비롯한 현금 자산 유동성과 관련해 양 정상은 금융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장치를 실행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선 ‘외환시장에 대해 협력한다’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금융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장치의 실행’이라고 명확히 한 것”이라며 “통화스와프는 중앙은행 간에 협의할 문제지만, 이 또한 ‘유동성 공급장치’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얼굴을 붉힐 각오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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