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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푸틴 쇼크…원화값 1400원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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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견뎌내겠다(Keep at it).”

세 번째 ‘거인의 발걸음’을 내디딘 21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물가가 떨어질 때까지 ‘견뎌내겠다’란 표현을 썼다.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려 물가를 잡은 ‘인플레 파이터’ 폴 볼커 전 Fed 의장이 2018년 출간한 자서전 『인내(Keeping at it)』를 연상시킨다. 파월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도 이 문장을 두 번 인용했다.

파월이 경기 침체 위험을 불사하고 긴축의 가시밭길을 택했다. Fed는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00~3.2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 6월과 7월에 이어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미국 기준금리는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1월 이후 15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연초보다는 3.0%포인트 높아졌다.  이날 미국의 인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국의 기준금리(연 2.5%)보다 0.75%포인트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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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파월이 시장에 보낸 메시지는 확실했다. ‘물가를 잡기 전까지 금리 인하는 없다’다. 공격적 긴축이 불러올 경착륙 우려에도 흔들림 없이, 그에 따른 경제적 고통도 인내하며 가겠다는 결기를 드러냈다. 미국의 수퍼 긴축이 더 길고, 더 세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부분동원령 발동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겹치며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22일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1달러=1400원’의 벽이 무너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15.5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409.7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원화값이 종가 기준으로 달러당 1400원을 밑돈 건 세계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20일(달러당 1412.5원) 이후 13년6개월여 만이다. 원화값은 장중에는 달러당 1413.5원까지 밀렸다.

이날 코스피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14.90포인트(0.63%) 내린 2332.31에 장을 마치며 이틀 연속 하락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네이버 등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하락 종목이 속출했다. 코스닥지수도 0.46% 떨어진 751.41에 마감했다. 이에 앞서 21일(현지시간) Fed가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에 나선 이후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70%),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1.71%), 나스닥지수(-1.79%) 등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금리, 연말에 4.4% 전망…4연속 자이언트 스텝 유력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장 전문가는 Fed의 매파적인 성향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내와 결기로 무장한 이는 파월만이 아니다. 매파(통화 긴축)의 전당이 된 Fed의 면모는 FOMC 위원의 금리 전망을 반영하는 점도표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점도표상 미국의 올해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의 중간값은 4.4%다. 위원 19명 중 9명이 4.25~4.5%를, 8명이 4.0~4.25%를 금리 전망으로 제시했다.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 상단이 4.5%가 되려면 앞으로 1.25%포인트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 올해 FOMC가 11월과 12월 두 번 남은 만큼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이언트 스텝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원이 다수라는 의미다.

미국 내년 말 금리 4.6% 예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파월은 FOMC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점도표상) 전망치가 1.25%포인트 추가 인상을 시사하지만, FOMC 내에서 1.25%포인트 인상과 1.0%포인트 인상으로 의견이 엇갈린다”며 “금리를 상당히 빠르게 제약적인 수준에 이르게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은 11월 FOMC의 0.75%포인트 인상도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다. 모건 스탠리와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UBS 등 다수의 투자은행(IB)이 11월 0.75%포인트 인상을 전망했다. 이어 12월 FOMC에서도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 예상된다.

긴축의 강도가 세지는 것뿐 아니라 기간도 길어질 전망이다. 내년 금리 인하를 기대하던 시장의 기대도 무너졌다. 점도표상 내년 말 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4.6%다. 지난 6월(3.8%)보다 0.8%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FOMC 위원 19명 중 6명이 내년 금리를 4.75~5.0%로 예상했다. 나머지 6명이 4.5~4.75%를, 또 다른 6명이 4.25~4.5%로 전망했다. 최소한 4% 후반대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고, 상황에 따라 5%까지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월가는 그동안 최종 금리가 높아야 4% 초·중반대일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은 “점도표가 기대보다 매파적이었다”며 “최종 금리가 4.5~4.75%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보다 더 높아질 위험이 크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긴축의 고삐를 단단히 잡는 건 쉽게 잡히지 않는 물가 압력 때문이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3% 뛰었다. 근원물가(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6.3%로 전달(5.9%)보다 더 높아졌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건 한번 올라가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주거비와 인건비의 오름세다. 9월과 10월엔 큰 물가 하락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물가와의 전쟁에 나선 파월은 “물가가 목표치인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레의 싹을 제대로 자를 때까지 이른바 ‘Fed 피벗(pivot·입장 선회)’은 당분간 요원하단 의미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연설문을 보면 물가상승률이 기존 미국 인플레이션 장기 수치인 2%대까지 내려오기 전까지 금리 인하는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침체가 Fed의 변심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도 어렵다. 파월이 경기 침체를 각오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피력했기 때문이다. 파월은 이날 기자간담회 첫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8월 잭슨홀 미팅에서 밝힌 내 메시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잭슨홀 미팅에서 미 가계와 경제에 고통이 있더라도 물가를 잡기 위해 고강도 긴축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파월, 물가 위해 경제 경착륙도 불사

Fed는 긴축이 불러올 경기 침체에 대한 예방주사도 놨다. 이날 내놓은 수정 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추고, 실업률 전망치도 높였다. Fed는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0.2%로 1.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연말에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4.0%)보다 3.8%포인트나 낮췄다. 실업률도 내년에는 4.4%(기존 전망치 3.9%)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에 올해 물가(개인소비지출·PCE) 전망치는 종전 5.2%에서 5.4%로 상향 조정했다. 근원물가도 4.3%에서 4.5%로 높였다. Fed가 목표치로 보는 근원물가가 2%대로 내려가는 건 2024년(2.3%)에나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파월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느린 성장이 필요하며 노동시장 상황도 좀 더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통 없이 이를 달성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없고, Fed가 해야 할 일은 인플레이션에 의미 있는 하방 압력을 가하는 수준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며,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경착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다.

경기 침체를 감내하겠지만, Fed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BofA에 따르면 Fed가 고강도 통화 긴축을 이어가도 고용시장이 견조한 만큼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는 시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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